산행기(백두대간)..완료

백두대간3차산행기(고기리~육십령)

해 악(海 嶽) 2006. 1. 20. 16:13
3892

백두대간3차산행(2005.3.31~4.3)

3,4,5,6구간 고기리~육십령(63.14㎞)

 

☞ 고기리~여원재: 10Km

☞ 여원재~사치재: 13.77Km

☞ 사치재~중재: 20.3Km

☞ 중재~육십령:19.07Km

 

3,4구간:       

고기리삼거리~운천교회~노치마을회관~우물~소나무,묘지~무명봉~수정봉~입망치/임도~무명봉(2)~임도~전신주좌측(주지사 입구 안내판)~여원재

 

5구간:    

여원재~561.8봉~무명봉~암봉~고남산~산불감시초소~헬기장~중계탑~임도/임도이탈~매요휴계실~목공소삼거리~618봉갈림길~쌍묘~사치재(88고속도로)~697봉~새맥이재~헬기장~넓적바위~돌탑~아막산성터~복성이재

 

6구간:

복성이재~무명봉~치재~무명봉(2)~봉화산~광대치~월경산갈림길~중재~중고개재~바위전망대~1066봉~선바위고개~영취산~안부이정표(논개생가)~북바위~민령~깃대봉~깃대봉약수터~육십령

 

 

 

 

3월 31일…18:00…출발

퇴근하자마자 준비된 배낭을 가지고 뛰다시피 공명네 집으로 집결하여

버스 편에 오른다.

오늘은 특별히 풍운 대원까지 합세하여 세명의 한팀이

나름대로의 대간을 즐길 것이다.

 

그 이름 하여 해악,풍운,공명….”나름대로의 백두대간 종주”

거창에 도착 택시로 고기리 까지 이동..

택시 기사 분이 고기리란 지역을 알고 있지 못해 인월 경찰서 민원실

민중의 지팡이 격인경찰서를 찾아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재이동 하는 해프닝 까지

 

 

3월 31일…23:00…수정봉 초입 …야영

고기리 삼거리에서 선유산장 민박집을 지나고 지방 도로 따라

운봉 쪽으로 향하면 가재마을….

운천교회 펫말과 덕치 보건진료소 안내판 사이 시멘트 도로….

노치 부락입구 돌표지석 (운봉 방향으로 좌측 두번째 마을) ..

노치마을 회관을 돌면 왼편 마을공동 우물이면 곧바로

대간 리본들이 “어서오세요”라고 나부낀다..

 

곧이어 마을뒷편 노송5그루 정도 만나면 적당한 야영 할 곳이 생긴다..

수정봉 초입을 찾은 것이다..휴…..

모두 잠든 컴컴한 야밤에 등산로 초입 찾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예로부터 판소리의 고향이 전라도에서는 운봉이며 경상도에서는 함양이 유명하다

 

불 꺼진 조용한 마을 개 짖는 소리와 가끔식 부엉이가 하품하는 소리로

판소리의 춘향가를 대신하여 듣기로 한다....

 

대원들간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 텐트치고

식사준비하고 침낭 속까지의 시간은 아주 짧다

 

대간의 길 잃기 쉬운 10개소 중에 한 구간 인지라 야간산행은 자제하고

해 뜨는 시각에 맞춰 운행 하기로 작전회의를 마치고 간단한 음료와 함께...

내일의 산행을 위해!!!!

 

 

 

수정봉 초입

 

 

야영....

 

 

 

                              (수정봉 초입:아직까진 컨디션 Good!!!)

 

 

4월 1일…07:10…수정봉…

05:00 기상 식사… 마무리 정리 06:00 출발..

첫 무명봉 까지는 고도를 높이는 산행이 기다린다.

자칭 수색대출신인 풍운 대원을 선두로 해악 ,

공명대원 순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첫 고인돌을 지나니 뒷 따라오던 공명대원이 사라졌다

불러도 응답이 없자 역으로 찾으러 갔지만 뒷간을 다녀오는 중이란다..ㅎㅎㅎㅎ

 

대간을 아는 이는 배낭 무게의 최소화와 더불어

식수들과의 전쟁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구간은 야영을 준비해온 구간이라 배낭무게도 20키로 이상이다

배고프면 밥 해먹고 잠이 오면 자면서 충분한 대간과의 대화를 할려고 야영을 준비하여 출발했으며 산속 조그마한 텐트 속이나마

산과 땅의 정기를 많이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09:10…여원재.. 무게감

서서히 고도가 올라오면서 어깨에 무게감을 느끼며 식수

보충을 위해 마을을 들러식수통을 가득채운다..

다음 식수보충을 할수 있는 곳은 매요 마을 휴게실과 사치재……

 

대간의 종주방식은 재(령)-능선-봉우리가 반복되는 코스로서 식수보충 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만 재(령)으로 내려서서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면 바로 식수통을 채워야 할 것 이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겨울을 제외한 대간길은 물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제 능선을 만나 다시 고남산 정상을 향하여….

 

 

12:30…고남산 정상 …황산대첩비…독도는 우리땅…

여원재 에서 고남산 까지는 완만한 오름길,561.8봉 직전 갈림길에서 갑자기 우측으로 급격히 꺽이는 급비탈길로 내려섬(독도주의) 대간 리본들이 정리가 잘되어 있슴.

고남산 직전 암릉 로프 코스가 두군데 기다리고 있슴

 

첫로프 구간이 지나면 우회하지말고

두번째 로프의 암릉을 오르는 편이 안전함..

우회시 로프가 짧고 밑이 낭떠러지라 위험

 

고도가 오르면서 고남산 정상 칠부 능선 에서의 깔딱 고개..

~헉~…그것도 모자라 선두 풍운 대원의 기합소리가 나온다..

하나!~둘!…조금 지나니깐 관세음!~ 보살!…

조금 더 지나니깐 독도는! ~ 우리땅!

 

 

고남산 정상에서면 뒤로는 지금껏 넘어온 지리산에서부터 넘어온

봉우리들이 즐비하며

북서 방향의 도로가 아마도 24번 도로 일 것이다..

 

그러면 그 방향의 조그마한 산이 황산 이란 말인가

지명상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

섬나라 우산국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되 먹지 못한 무식한 죄…….

 

대간의 호랑이 격인 척추를 토끼로 만들어 아직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포항시 대보의 해맞이  공원을 토끼꼬리 라고 명명한 공문서 위조죄…

호랑이 꼬리라고 해야 당연하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이용해 태백산맥이란 단어를 만들어

아직껏 사용하게 한죄

대간의 정기에 쇠막뚝 박아논 파렴치한죄…주거침입죄…못된죄는 죄다…

이 왜구 넘들아 새중에서 가장 무서운 새는?…..

3자로 하면…..시팡새....들아..

 

 

 

 

 

 

 

나라를 지키며 왜적을 초벌한 최영 장군이나 이성계 장군이 다시금 생각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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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대첩….”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고려 고종 10년(서기 1223)부터 공양왕 3년(서기 1391)까지 168년 사이에 왜구의 침입을  받은 것이 484회에 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수많은 왜구의 침입을 당하여 우리나라는 많은 재산과

인명의 손실을 가져왔던 것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를 보면 고려 우왕 2년 (서기 1376) 침입한 왜구를 최영 장군이 홍산에서 크게 무찔러 그 뒤로는

왜구의 침입이 한동안 잠잠하였다.

 

그 뒤 우왕 4년(서기 1378) 왜구들이 대거 침입하여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토벌에 나선 이성계(李成桂) 장군은 가는 곳마다 왜구를 격퇴시켜

그 용맹이 아군은 말할 것 도 없고 왜구들에게까지 날로 높아갔다.

 

우왕 6년(서기 1380) 8월 추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왜구는 500여척의 함선을 이끌고 진포로 쳐들어 와 충청, 전라, 경상도의 3도 연해의 주군을 돌며 약탈과 살육을 일삼았다.

 

이때 전라도 감영(전주)은 왜구로 인한 피해와 참상을 소상히 적은 장계(狀啓, 공문서)를 받은 고려의 조정에서는 나세(羅世), 최무선(崔茂宣), 심덕부(沈德符)등이 나서서 최무선이 만든 화포로 왜선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배가 불타 갈곳이 없게 된 왜구는 옥천,영동,상주,선산 둥지등으로 다니면서 이르는 곳마다 폐허로 만들었다.   함양 사근내역에서는 박수경(朴修敬의), 배언(裵彦)등 2원수와 군인 500여명을 죽이고 분탕질 했다.

 

이  해 9월에는 운봉 인월역에 이르러 "장차 광주땅의 금성산성(金城山城, 지금의 담양 순창 경계에 있음)에서 말을 먹인 뒤 곧 북상(北上)하리라"는 소문을 내니 민심은 날이 갈수록 흉흉해졌다.

 

  려의 조정은 이성계를 도순찰사(都巡察使)로 임명하고 변안열(邊安烈)을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왕복명(王福命)등을 원수로 삼아 왜구를 토벌케 했다.  

 

이성계와 번안열이 이끄는 토벌군이 남원에 토착하니 왜구는 인월역에 있다고 했다. 운봉을 넘어온 이성계는 적장 가운데 나이가 어리고 용맹한 아지발도를 사살하는 등 선두에 나서서 독전, 아군보다 10배나 많은 적군을 섬멸케 했다.

 

이 싸움에서 아군은 1,600여필의 군마와 여러 병기를 노획하였다고 하며 살아 도망간 왜구는 70여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리는 이 싸움을 황산대첩(荒山大捷)이라 부르며 최영(崔榮)의 홍산대첩(鴻山大捷)과 더불어 고려시대에 왜구와 싸워 승리한 2대 대첩이라 부른다.

 

이 대첩이 끝난 뒤로는 왜구의 침입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황산대첩은 왜구의 발호가 없어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한다.

 

지금도 이때 대첩에 얽힌 지명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피바위 전설이나 이성계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 달이 일찍 떠오르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고 하여 인월(引月)의 지명이 생겼다고 하며, 아군의 군마(軍馬)를 매어 두었다고 하여 생긴 군마동(軍馬洞), 아군의 중군이 머물렀다고 하여 중군리(中軍里), 아군이 바람을 등자고 싸우기 위해 바람을 이끌어 왔다고 하여 인풍리(引風里)등이 있다.

 

성계 장군은 황산대첩 12년 후인 1392년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되었고 조선조 선조 10년(1577년)에 이르러 이성계의 황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승전비 "황산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를 세웠다. 이 비의 비문은 김귀영(金貴榮)이 지었고, 글씨는 송인(宋寅)이 썼으며, 글씨를 새긴 사람은 남응운(南應雲)이다.

 

 그 뒤 현종 8년(1667년)에 이르러 현감 허제(許濟)가 비각을 세웠다. 일제는 이곳에 새겨진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버리려고 지난 1945년 1월 17일 새벽에 대첩비를 폭파하고, 각자(刻字) 암벽과 대첩비의 글씨를 정으로 쪼아내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재는 새 비석을 세운 한편, 폭파되어 누워있는 비석 또한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 남원의 민간신앙>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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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0…헬기장,중계탑 …오침…

초여름 더위도 아니지만 봄의 따뜻함을 느끼며 간단한

이동식으로 한끼를 때울수 있다..

 

항상 야영전에 밥을 넉넉히 해서 도시락으로

다음날 오후 이동식으로 챙겨 놓고선

나머진 당일저녁과 아침으로 대체하는 방식..ㅎㅎㅎ….

엄청난 크기의 중계탑을 정면에 두고선 헬기장의 H 자리에

한자리씩 배낭을 베고 누워거풍과 동시에 봄날의 오침을 즐긴다

13:50…출발 하세 !!!!!!!!

 

 

16:00…매요 휴게실 …  폭탄….…

대간지기들이 지나면서 입으로 입으로 소문 나다가 인테넷 으로

더욱 유명 해진 곳이다 ..

 

이번 산행에 도움이 될까 해서 등산화 깔창을 교환했으나 아직 까지 제대로 길들여 지질 않아 엄지 발가락의 고통이 무릎으로 전해 옴을 느끼며 여기서라도 수리를 해야 운행가능판단.. 깔창 수리중…..

막걸리가 넉넉치 않아 소주와 맥주의 폭탄으로 간단히 마무리하면서

요즘 대간지기들의 정보를 충분히 듣는다..

 

또한 식수를 보충할수 있는곳이 앞으론 사치재(지리산 휴게소)..

복성이재(마을)..그리고 중재(마을)…

쉬엄 쉬엄 가라고 손 흔드시는 할머니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인사말과 함꼐 사치재로 향하여 출발 17:10…

 

18:00....퇴근시간 

지난 휴게실에서의 할머니께서 짐이 많은 것 같으니 사치마을 도로로 가면

40분 정도 단축된다고 했으나..

우리는 대간의 형세를 느끼며 대간길로 가리라..

숲속의 어둠이 내리기 전 88고속도로가 보이면서 내려서면 바로

사치재 일 것이다..

 

18:00 이면 퇴근 시간이니 내일을 위해 야영이 바람직 한 것 같다..

후다닥..벌써 텐트는 완성이 되었고 된장찌개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다..

산의 음식들은 땀을 많이 배출하므로 짠 음식이 제격이다..

물만 넣으면 끓여 먹을 수 있게끔 된장 찌개준비를 해준

집사람에게 한번 더 감사..감사..

 

양배추를 채반에 넣어 데쳐서 뻑뻑한 된장찌개에 한쌈…두쌈….

어느 누가 죽었는지도 모를 맛!!!!!!!

만두 찌는 채반까지 베낭에 지고 다니니 당연히 짐이 무겁지..ㅎㅎㅎㅎ

하여튼 우리 팀 들을 독특한 멋이 있는 것 같다…ㅎㅎㅎ

 

젖은 땀냄새에 발 냄새에 코 고는 소리에 귀신은

다 도망가버리고 애꿎은 풍운 대원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날 풍운대원은 보초병..ㅎㅎㅎㅎ

 

 

4월2일 06:20…사치재(지리산 휴게소)… … 고로쇠 수액….…

05:00 기상과 동시에 후다닥…이른 아침 식사와 커피한잔에 출발..

20분쯤 능선을 내려오니 88고속도로…

등산로 초입은 바로 앞이지만 1Km정도 내려가 지리산 휴게소를 들린다..

화장실에 들러고 식수 보충…게다가 고뢰쇠 수액 까지 ….

풍운대원 에게 줄 선물..ㅎㅎㅎㅎ

한 시간정도 여유를 부리다 늦게 출발 07:10

 

 

 

08:20….697봉… … 고도.…

재에서 출발이다..그러면 고도를 높여주는 능선이 당연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697봉까지 힘겹게 고도를 올려 야면 되는

경사도 7% 라고 표시되어 있다.

 

697봉..우측으로 지리산 휴게소와 88고속도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의 산행 길들은 확연하지 않지만 뒤를 돌아 보며 지나온 산자락을 회상 할땐 가슴에 벅차오르는, 표현을 할수 없을 정도로의 묘한 느낌이 머리카락사이의 흘러내리는 땀을 대신하여 가슴을 달랜다……

 

이구간 까지의 산행길은 제법 뚜렷이 잘 나있는 편이며 잡목지대가 많아 긴 옷을 입고 운행함이 바람직함

 

 

 

11:05….아막산성터… … 삼국시대...…

시리봉 갈림길에서 고도를 높여 넓적 바위에 다다르고

너털지대를 미끄럼 타듯이 엉덩이와 땅이 씨름을 하며 내려오면

다시 돌탑이 기다리고 있다.

 

돌탑정면에서 보면 조금전 넘어온

고남산의 중계탑이 한눈에 들어온다…멀리도 왔군…

아막산성터에 도착 북으로 가로질러 대간 리본을 찾음과 동시에 나무로 만들어진 대간팻말이 선명히 나타난다..

 

먼저 다녀간 대간지기 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여기가 바로 삼국시대때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

시리봉과 봉화산 사이에 있으며 백제에서는 아막성,신라에서는 모산성 으로 불리던 곳…

 

현재 파악되는 성의 규모는 둘레 632.8m에 북문지와 수구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동쪽에는 직경 1.5m의 원형 석축으로 된 우물터가 있으며 전북지방 기념물 제38호로 지정..

 

 

 

11:25….복성이재… … 식수보충…오침....…

재로 내려오니 다시 오름이라..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식수 보충…식수보충 거리가 왕복1.5Km 정도..

복성이재는 흥부마을로 알려진 성리쪽으로 내려가는 길(아영면)은 포장이 되어 있으며,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남원에는 일찌부터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가 실존인물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왔다..

그 가운데서도 동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흥부와 관계된 마을 이라고들

하는데 내용인즉 성산 마을은 흥부가 출생한 곳이며

성리마을은 승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유랑 끝에 정착하여 복을 누리고 살던

곳이라 한다

 

성산리는 남원과 함양을 잇는 팔령치 아래쪽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라면과 햇반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따뜻한 햇살아래 잠깐의 오침...13:30..

 

 


14:00….무명봉… … 바래봉의 손짓....…

고도를 높혀 첫 무명봉에 오르면 북동 뱡향의 봉화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복성이재 에서 시간을 넘 지체한 관계로 중재까지 갈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길을 재촉한다..

 

바래봉 팔부 능선부터 봉우리 까진 여기서 봐도 갈색의 억새밭 색

깔을 품고 있다..

 

바래봉의 철쭉제가 유명하다고 익히 잘 알고 있으나 때가 일러

철쭉이 피지 않았다고 가정을 하지만 정상부근은 갈대숲은 연상하는

겨울철 억새밭 색깔이라……

의심쩍은 마음을 같고 계속하여 길을 재촉한다….

 

산에 대한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자칭 수색대 출신인 풍운대원

뒤이어 산을 오르 내림이 삶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는 해악대원….

 

장비 무게를 게의치 아니하고 묵묵히 뒤를 맡으며 모든 산행시 자신을 만나러 간다고 고행의 길을 재촉하는 공명대원….

그렇지만 남들이 우리들을 보는 모습은 무장 공비라 할까? ㅎㅎㅎ

 

 

 

15:40….봉화산(바래봉)… … 철쭉의 은폐…...…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솟은 봉화산(920m)

철쭉이 곱기로 이름난 산이다.산사면과 암릉 곳곳에 철쭉이 드넓게 군락을 이뤄 온종일

철쭉 향기에 취하며 걷는 봉화산은 5월 중순에 만개 한다..

정상에 와보니 북측 반대편 산자락의 7부능선 에는 온통 철쭉으로 덮혀있다..

 

 

 

 (봉화산 정상)

 

 

이러한 광경을 자세히 보려고 이산에는 능선의 에스자 코스로

임도가 나 있다는 현실과자연을 파괴하는 자체 만으로도 공명대원 및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더 아프게 한다....

 

이곳을 차량으로 오를수 있는 도로가 난다는 것이 가슴 아픈일이다

꼭 차량을 가지고 와서 떠들며 철쭉을 봐야 하는것인가

관광객들이여!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철에 감상하시고

주의정돈 잘하고 가시길!……

 

혹 휴지라도 떨어진 모습을 보면 공명대원의 가슴은 더욱더 아파할 것임

바래봉을 내려서면서 키만한 억새밭 사이로 산행을 즐긴다..

잠깐 쉬었다 갈까….16:20…

 

20:00….중재…..민박…박카소주.....…

 

 

무명봉 두어봉을 지나면 광대치를 거쳐 월경산 갈림길…산사태 지역을 벗어나면서 해가 서산을 넘어간다…잠시 쉬면서 해드 랜턴에 불을 붙인 후 내리막을 내려서면 중재….

어떤 넘인지 몰라도 중재에 또 쓰레기를 버리고 갔어라…..

되먹지 못한 넘들…..

대간을 다니지나 말지

 

내일 일기예보가 비가 온다니 오늘밤은 민박으로 정하고 아침 되면 날씨를 참조하여 산행 예정………..공명 대원의 얼큰한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민박집 주인이 먹을 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돼지고기도 공짜로 주니 감사

감사…

 

복성이재에서 구입한 박카스 와 소주를 혼합 하면 박카소주..ㅎㅎㅎㅎ

박카소주에 김치찌개..환상의 음식 조화라…

예로부터 신화에 나오는 박카스는 술의 신이라 했던가

제발…비는 많이 오지 말기를 빌며!…………..쿨….쿨….쿨….

 

잠깐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벌써 아침이다..

이른 새벽에 빗방울이 제법 왔었나 보다..현재상황 양호…산행을 하리라…

모두 찬성….

후다닥…남은 찌개에

 식사를 마치고 도시락에 밥을 채우며 산행 아닌 고행을 하네.. 08:30…가세나…오르세…산행일세…고행일세…....…

 

 

 

4월3일 09:30….바위전망대…추의…....…

얼굴과 등짝의 땀은 비오듯이 한데 …손이 시려워 온다..날씨가 영하권이다…

지금고도가 1000 고지 이상일 것이다…군데군데 얼음이

녹지 않고 있고 비로 인해

 

가야할 길이 축축히 젖어져 있다

전망대에의 시계는 눈보라와 안개 때문인지라 도통 분간을 할수 없을 정도

이정도 높이면 산세를 즐기며 돌아보면서 충분히 감상할수 있으련만

공명대원의 한숨소리와

앞서간 풍운대원의 거칠은 숨소리만 들린다

 

 

 

10:15….백운산 정상(1,287.6m)…눈과 비…....

백운 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그중에서 “흰구름 산”

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하는 산이바로 함양의 백운산이다

제대로 걸렸다..백운산에서 눈이라도 봤으니…

4월봄의 눈이라……

 

풍운대원의 대형면허 합격이라 백운산이 우리들을 축하를 해주는 것 같다

산의 조망은 멀리 지리산 천왕봉 부터 즐비하게 보이지만 눈

과 비로 인해 산세를

시각적으로 감상하기란 불가한 상태

 

다만 정상표지판에 설치된 안내도 만으로만 감상…ㅎㅎㅎ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남쪽 하늘금을 그은 지리산의 파노라마는 우리가 지나온 그리움의 경지를 넘어 차라리 연민의 정을 느끼게끔 하였고 ,

반야봉 자태는 뚜렷하게 보여 민망스럽기 하다.

 

물론 북쪽 끝머리에는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만 보고 글로 표현하기가 힘드는군…

비옷으로 무장하며 배낭을 커버 속으로 숨기며 다가올 추의와 비와 눈에 대한 대비를 한다..

,여름,가을,겨울의 기분을 한꺼번에 백운산자락에서 느낄수 있는 자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남?

 

3일동안 처음으로 백운산 정상에서 사람을 만난다..부산에 살고 있는 40대 후반 부부인데..

정감있게 보이는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다..사진한컷….

4월에 눈내리는 산…푸하하….추워…추워..움직이세나…움직이세나…(10:40)

 

 

 

                                             백운산 정상

 

 

11:40….선바위 고개를 지나며…강행…....

선바위 고개를 지나며 영취산 바로밑 안부에 도착

백운산에서 영취산까지는 대나무숲 구간이 많으며 너털지대 또한 많아서 빗길 운행이 쉽지는 않았다..또한 그 숲을 치고 나가면서 대나무 잎이 머금고 있던 눈과 비를 토해 내면서

옷자락과 바지의 무릎 부분은 젖어만 간다..

 

암봉과 1066봉을 지나고 영취산 바로전 선바위고개 에서(11:40) 산행을 강행 해야하나아니면 조금지나 무령고개로 탈출을 해야 하나 결정을 해야만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점심 먹으면서 결정하리라

판쵸우의를 걸친체로 끓여 먹는 라면맛….호호..후후..불어가면서…

 

끓이는 라면위로 눈봐 비가 내린다..ㅎㅎㅎ

어제 남은 박카소주도 한잔으로 추의를 이기며..마무리 커피까지…

기상악화 조건에서도 디저트까지 챙겨 먹는 우리대원들…대단하지 않은가…

 

오늘은 휴일이라 제법 대간꾼 들이 지나간다

조그마한 배낭에 음식과 물만 챙겨오는 대간꾼들

우리 대원들을 보며 기겁을 한다..”이렇게 중배낭을 메고 다니십니까?”

 

이번 구간은 이렇게 준비를 했구요..덕유산 구간은 다를 것 입니다…ㅎㅎㅎㅎ

고도가 조금 떨어져서인지 눈은 비로 변해 버린듯 사라지고 부슬비만 내린다..

오후에는 비가 그칠 것 입니다..라고 옆의 대간팀중에 리더가 이야기한다…

탈출 할것인가….강행 할것인가….

 

바로 앞의 탈출코스가 있다…하지만 출발을 해보자…가세나 가세나..

탈출코스인 무령고개의 안내판을 서로가 말없이 조용히 지나버린다..ㅎㅎㅎ

말없이 강행을 하자는 의견인 것 같다…가세나 육십령으로……

이제는 육십령 까지…덕유산으로…비가오나 눈이오나 가세나…

 

진눈깨비와 비를 맞으며....

 

                              (영취산 정상에서..)

 

 

13:10…영취산 정상(1,075.6m)…… 고행일세..

영취산은 백두대간 종주코스 지도에는 표시되지만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으로 함양의 진산인 백운산에서 백두대간이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도중에 거치는 산이다..

정상의 오름은 북으로 남덕유산 서쪽으로 장안산 남으로 백운산이 지도상 조망되지만시계가 너무 흐려 머리속에서 그려볼 뿐이다

 

영취산을 준말로 영산,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 뜻은 산세가 “빼어나다” “신묘하다”“신령스럽다”라는 뜻으로 산줄기와 물줄기의 요충지로는 딱이다..사진만 한컷…고행일세…고행일세…계속가세나….(13:10)

 

 

 

14:50….북바위…..육십령터널…....

영취산에서 암봉을 지나자 마자 논개생가를 표시하는

안부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논개라….

영취산 북쪽의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 마을이 논개의 고향이다.

논개는 진주목의 관기로 임진왜란 중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이긴 왜군이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일 때 왜장을 남강가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에 빠져 순절한 의기 이다

 

주촌 마을에는 논개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으며 장수읍 두산리에 의암사 라는 논개 사당과 촉석 의기 논개생장향수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보지는 못한다…

 

영취산 이전 능선 왼쪽의 물은 섬진강으로,영취산을 지나면서 왼쪽은 금강으로,오른쪽은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계속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을 걷게된다..

 

다시 말해 왼쪽다리는 전라북도며 오른쪽 다리는 경상남도

중간다리는 아마도 도경계선 일 것이다..ㅎㅎㅎㅎ

북동쪽에 위치한 덕유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며 산정상에서의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며900고지의 정상의 산행길…….

 

소방헬기가 우리 발밑 자락에서도 한참을 내려 비행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게다가…회색빛 먹구름으로 인해 막혀버린 하늘 태양의 그림자가 덕유산 동쪽부터 서서히 서광이 비춰주더니만 10여분의 시간으로 연극의 장막이 열리듯이

바람처럼 먹구름을 삼켜 버리며 태양을 등에진 우리대원 들의

그림자를 살려낸다..……

실로 자연만이 연출 할수 있는 파노라마가 아닐까?……

 

북바위에 오르면 오른편으로는 육십령 터널 속으로 조그만 하게만 보이는 자동차들이 들쑥 날쑥하며 왼편 마을쪽이 아마도 논개의 고향인 것 같다

북바위의 정면 절벽밑이 아찔 하면서리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17:10….깃대봉…..까마귀 5마리…....

까마귀 다섯마리가 노닥거리는 봉우리를 찾아 오르지만 바로앞의 봉우리가 깃대봉 이라..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높은 봉우리들이 보이게 된다..

산의 정상이란 올라서면 360도 회전 전망하여 다른 봉우리들이 발아래 있어야 그곳이 바로

그 산의 정상인 것이다..모두가 아는 사실…ㅎㅎㅎㅎㅎ

 

 

  (깃대봉 정상)

 

북쪽의 할미봉이 바위로 무장하면서 암릉의 위험구간이 머리속에 인식하며 서봉부터

백암봉 ….장엄함을 표현하고 있다…

지리산은 천황봉을 넘어올수록 자태를 보여왔지만 바로앞의 덕유산은 시작부터 모습을

보이며 다가올 다음산행에 긴장감을 나타낸다...…

이 길을 내려서면 약수터가 지날것이고 또 내려서면 이번구간의 마지막인 것이다

너털너털 가세나…이제야 다 왔어라…대원들 힘내세요…

 

 

 

18:00….육십령….18번홀

이 고개 이름을 육십령이란 이야기는 여러 가지다..

첫번째는 안의 감영에서 고개까지 육십리 이고,

장수 감영 에서도 육십리 라고 해서 붙인 이름.

 

두번째는 이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세번째는 산적의 화를 피해 육십명이 모여 이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

믿거나 말거나..ㅎㅎㅎㅎ

항상 골프에서의 마지막 홀은 아시움과 시원함을 나타내듯이..

 

쩔둑이며 내려오면서 세명의 대원들은 둥글게 모여 손을잡고

“무.릉.도.원”을 외치며 고기리~육십령(63.14Km)의 구간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마친다…

 

온몸의 뼈마디의 고통 스러움은 어디가고 “해냈다”라는 뿌듯함에

다음산행 준비라는 기대감에 대원들의 얼굴은 그지없이 밝다….

 

바로 앞의 덕유산 할미봉은 산불조심 기간이라(3.1일~4.30) 입산통제 구역…

식량도 바닥나고..보조자일도 없고…ㅎㅎㅎㅎㅎ

다시 돌아오리라….I will be back!!!!!!!

 

 

 

3차 종주산행을 마치며…..

이번구간의 구석구석에 대간리본 들이 즐비하여 어렵게 생각한 길을 쉽게

넘어올수 있었던 부분은 먼저 다녀간 대간 산지기 분들에게 감사한다

대간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우리 국민들은 너나 없이 한번쯤은

경험해 볼만 하다..

 

지금 일본넘 들이 까불고 있지만 그들은 백두대간 처럼 아름다운

자연 산하가 없으니

질투도 나고 미치기도 할 것이다….….

 

3차산행 동안 줄곳 텐트를 배낭에 걸치고 다니며 묵묵히 산행해온 공명대원,

이틀밤의 야영으로 그 동안의 무게감이 빛을 발휘하며 웃음짓는

모습이 아직껏 머리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음은 비박 준비를 해서 비박도 경험해 봄이 어떨까?..ㅎㅎㅎ

 

사람이 살면 100살을 살아 갈수 없듯이 바다와 산을

소재로한 자연이란 이성계 장군과  

김유신 장군이 할동 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여

현재나이로 따지자면 단군신화로 부터 2005살이라….

 

 

우리선조가 배워 오듯이 소학이나 동문선습에 나오는 삼강오륜을 보면

부자유친이니 장유유서니……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인간은 아니지만 나이로 따지면 제일루 많은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에 대해 친함이 있어야 하며 공경함이 당연함이라 생각한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도 산과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우리가 지내야할 환경은

도시가 아니라 먼 조상들 때부터 지내온 산과 자연인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찾아 퍼덕이듯이 우리는 산을 찾는 것이다……

 

 

 

 

 

 

                                   2005년 4월 10일

                              고기리~육십령 구간을 마치며 …..    

 

 

 

 

 

자연으로 돌아 가자.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몸은 자연의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자연의 기운을 원하고 있다.

우리의 몸속에 있는 유전정보는 대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알맞게 되어 있고,

우리의 신체도 아직까지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에 알맞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장래 풍습에도 결국은 땅이나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우리들의 육체는 언젠가는 땅이나 바다로 흡수되어 버림을

너무 당연한 모습으로생각해 버리지만

이러한 사실을 의미 있게 생각하기란 쉽지가 않다....

 

평생을 도시 속 에서 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뒤 돌아

볼 때면 너무 불쌍하지 않나

 

우리나라의 70%가 산이며 삼면이 바다로 되어있지만..

우린 이러한 도시를 떠나 살수는 없는 것일까?

 

결국은 시멘트 콘크리트속의 아파트란 새장에서 갇혀

우린 우리 자손들에게 무엇을 해 줄수 있으며

또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라며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껏 다녀본 대간의 모습은 항상 산정상의 능선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았었다......

 

다만 대간 정상의 삼각점인 봉우리와 능선에서 시발점인 물줄기가 모이고 모이고해서 강을 이루며 나아가 물이 많아지는 곳이면 반드시 마을이 형성되고

세월이 흐르면 그곳이 바로 복잡하게 얽혀진 도시로 발전한다..

 

참으로 이상하지 아니한가

산에서의 잠자리는 춥고 불편 하진만 아침의 새소리와 함께

눈을 뜨면 땅의 정기를

받아서 인지 몸이 가볍고 개운한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며

도시 속의 아파트란 새장에서의 잠자리는 오래 푹 쉬어도

뭔가가 모자라는 듯한 느낌….

 

사람들도 때때로 분위기 좋은 자연환경을 접할 때면

'아! 좋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왜 좋은가는 모르고 있다.

과일을 먹어본 넘이 맛을 안다고

산 역시 다녀본 넘이 산을 맛을 아는 것 아닐까?

 

그렇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당연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을 벗삼아 즐기며 자연으로

돌아 갈려는 의지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 가리라!!!!!!!!!     

 

 

                        

                                       백두3차 산행을 마치며…………

                                         2005년 4월 18일..  해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