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백두대간)..완료

백두대간36차(미시령~백담사)

해 악(海 嶽) 2016. 10. 30. 18:47

백두대간 36차 산행(161030)

설악산 구간 : 황철봉

☞ 교통편 : 제이캠프3차

☞ 코스 : 미시령767-울산바위갈림길-너덜지대-황철북봉1318-황철봉1380-저항령-

            너덜지대-1249봉-1178봉-마등령1320-마등령삼거리-오세암-백담사-용대리 :17km

 

 

백두대간의 한계령-공룡능선-미시령을 중심으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 속초지역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속으로..

지난 공룡능선을 타고 신흥사로 내려섰지만 이번에는 백담사 방향으로..

접속구간을 유용하게 활용함으로 석악의 구석구석을 볼수 있었다..

황철봉 일대는 국내 최대 너들지역 으로 역쉬 비법정탐방로...

가끔씩 길을 잃어 조난사고가 많은지역..

겨울산행때면 특별히 독도와 안전산행에 조심해야 할구간이라....

 

1차도전 10월24일 ..실패

짖눈개비와 비 그리고 영하의 추의로 인한 산행 불가...

설악이 우리를 반기지 않으니 후퇴..

이 구역이 위험 및 조난에 무방비하다는 인터넷 정보에 수용할 수 있었다..

사실 이코스를 다녀보니 야간산행,우중산행은 위험을 초래하는 구간 이었다.

 

 

2차도전 ...미시령...

1970년 3월 설악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도로의 통로로서 더욱 중요시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이 고개를 미시파령(彌時坡嶺)으로 소개하고 있다.

 

예진부령·대관령·한계령 등과 함께 태백산령을 넘는 주요 교통로..

태백산령 북부의 횡단로로 설악산 북부를 넘어 인제∼속초를 연결한다. 

도로 연변에는 영서 쪽으로 백담사(百潭寺)·십이옥녀탕(十二玉女湯)·도적소(盜賊沼),

영동 쪽에 선인재[仙人峙]·신선바위[神仙岩]·혜바위[?岩]·화암사(禾岩寺)·울산바위[鬱山岩] 등의

화려한 명소가 있다.

 

지형이 험하나 계곡과 산세가 수려하며, 서쪽 사면에서는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이 발원한다.

 

 

동해 일출과 속초 시내의 야경..

 

새벽녁의 너덜지대라???

뚜렷한 길은 없고 오로지 기어 올라가야만 하니...ㅎㅎㅎ

 

선배 산꾼들이 설치한 희미한 야광등..

그리고 가느다란 밧줄...

너덜지대의 뚜렷한 길이 없기에 양광등과 밧줄이 생명줄같이 감사 했다..

 

이 표시등으로 진행 방향을 제대로 알수 있었기에..

비나 짖눈개비의 경우에는 되도록이면 천천히 진행 유의..

 

너덜지대...

암괴원은 기반암에서 분리된 각이 진 큰 바위 덩어리들이 완만한 사면에 넓게 나타나는 지형으로

보통 너덜지대라고 부른다.

주로 고위도 지방이나 교목한계선 위의 고산에 나타나며.. 

신생대 제4기 빙하시대에 빙하 주변의 한랭한 주 빙하 기후 지역에서 기반암이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암석이 갈라지고 부셔져 생긴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닌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암괴원은 설악산국립공원의 황철봉(1381m) 일대이며,

월악산국립공원의 대미산 능선에 작은 규모가 분포하고 있다.

암괴원은 과거 산지에서 있었던 기후 변화와 자연 환경 변천사를 알려주는 지형 경관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북쪽 봉우리라고 해서 미시령과 함께 ‘북설악’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천연보호구역 지정비가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조망은 가히 절경이라는 말로 표현할 만하다.

공룡능선과 집선봉, 화채봉이 건너편 풍경으로 다가오고, 멀리 대청봉과 중청봉, 용아장성릉, 서북능선의 위용과 내설악의 첩첩산릉도 한눈에 들어온다.

황철봉의 남쪽 사면은 바위를 드러낸 거대한 단애(斷崖) 벼랑이다.

중간의 수많은 바위들은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하계를 내려다 본다.

쓰러지고 넘어진 바위는 산산조각 나서 폭포수 같은 너덜을 만들어놓았다.

황철봉이라는 이름은 바위의 색에 따라 붙여진 듯한데..내 눈에는??? 

 

 

연이어 나타나는 너덜지대에 장갑마저 너덜너덜해 지고??

이래서 너덜지대라 그너나??

 

북주능선(北主綾線)에 있는 고개 중의 하나.

동쪽으로는 정고평(丁庫坪)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百潭寺)에 이른다.

다른 말로 늘목령이라고도 하는데, 저항령(低項領), 늘목령 모두 노루목고개, 목우(牧牛)재와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진 고개라는 의미의 늘으목, 늘목에서 유래하였다.

 

마등령 오르막까지는 너덜지대와 힘겨루기를 해야하고...

처음 너덜지대를 지날때는 조신조신 했는데..이제 날도 밝아지고 적응도 되어지니

이길도 무난히 추억을 남기며....

 

울산바위 방향...

울산바위의 전설

1. 울산(鬱山)바위의 울(鬱)은 울타리를 뜻하는 말로 울산(蔚山)의 울(蔚)자와는 완전히 글자가 다르다.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울산에서 왔기에 울산바위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울산바위는 울타리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울산바위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성 있다.

2. 조물주가 강원도 땅에 천하의 이름난 산 하나를 만들되 산봉우리의 수를 꼭 1만2천으로 할 계획을 세우고, 각 지방의 산봉 중에서 웅대하기로나 남의 눈을 끌만한 산에 명령을 내려 모월 모일 모시를 기한으로 금강산 쪽으로 오면 심사하여 합격한 산에 대하여는 용모에 알맞은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했다. 이에 전국 각처의 수많은 산들이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모두 모여들었다.

이때 경상도 울산(蔚山) 땅에 둘레가 10리나 되며 웅장한 바위인 ‘울산바위’도 금강산으로 떠나왔다. 그러나 태백산령을 걸어오는데 워낙 몸집이 육중해 빨리 걸을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걸었으나 설악산, 지금의 울산바위 있는 근처까지 와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쉰 뒤에 다음날 다시 육중한 몸을 끌며, 금강산에 가서 조물주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울산바위가 금강산 어귀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1만2천봉이 다 정해졌기에 자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주위의 웃음거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 바위는 어젯밤 쉬던 곳을 생각했다. 어차피 금강산에서 단역을 하느니, 외설악에서 주역 노릇을 하자는 생각으로 울산바위는 현재 외설악 중턱에 자리 잡았다.

3. 동자승의 재치가 빛나는 울산바위 전설이다. 울산바위가 울산에서 왔다는 전설을 들은 조선왕조 때 한 울산부사가 설악산에 탐승을 왔다. 이곳에서 울산바위의 전설을 듣고 승려들을 골탕 먹여 치부(致富)해 볼 꾀를 냈다. 부사는 신흥사에 들러 주지를 불러 ‘너는 어찌하여 내 고을에 있던 울산바위가 너의 사찰에 와 있는데도 지세(地稅)를 이제까지 물지 않느냐? 몇 해를 기다려도 지세를 가지고 오는 낌새가 없기에 오늘은 직접 지세를 받으러 왔다’고 호통을 쳤다. 이에 유생들 횡포에 기가 죽어 있던 신흥사 주지는 그해부터 울산부사에게 울산바위의 지세를 물기로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말았다. 그해부터 막대한 지세를 물다보니 신흥사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다. 주지승의 근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승의 근심을 곁에서 지켜본 동자승이 ‘앞으로 울산에서 울산바위 지세를 받으러 오거든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해결 하겠습니다’라고 자신했다. 얼마 뒤 울산에서 사람이 오자 동자승은 ‘지금까지 억울한 지세를 물어왔으나 이미 문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금년부터는 물어줄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계속...

 

동자승은 ‘울산바위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우리에게는 큰 손해일 뿐이니 울산바위를 도로 울산으로 옮겨가든지 하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온 사람도 도리가 궁해 ‘네 말대로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겠는데, 타고 남은 재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묶어주면 바위를 옮기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동자승은 마을사람들과 절간 승려들을 동원해 며칠동안 새끼를 꼬게 해 울산바위를 칭칭 감았다. 그리고 광솔에 불을 붙여 새끼를 다 태워버리니 울산바위는 재로 된 새끼로 얽혀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울산사람에게 약속대로 했으니 바위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자 울산사람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울산바위 방향...

마등봉...

어느 산꾼이 페인트로 봉우리 이름을 적어놨네..

 

설악산 대청봉까지 공룡능선이라 부르는 암릉의 기점이다.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함께 태백산령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였다.

지금은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 백담계곡과 동해로 흐르는 천불동계곡의 비선대를 잇는 대표적 등산로..

설악산국립공원의 중심부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봉의 조망이 일품이다

 

 

 

 

마등령...

 

 

마등령 삼거리..

강원 인제군 북면(北面)과 속초시 경계에 있는 고개.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만 지도에도 馬等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옛 기록에는 모두 麻登嶺으로 속초의 [설악산뿌리]에도 마등령으로 기록...

이는 산이 너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서 올라야 오를 수 있다 하여 유래.

 

오세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고아가된 형님설도 있고 증이 데려와 키운설도 있다고..

그러나 중요한건 오세에 득도하였다..하여 오세암이라..

관음보살상이 중간에 모셔져 있고....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머물렀던 곳이고, 조선 중기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보우가 수도하였으며, 근대의 고승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김시습과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면서 『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것은 매우 유명하다

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님이 기거하였다고??

 

아마도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백담사에서 이곳으로 운동하러 다녔을것 같다..

경치가 수려하고 암자 치고는 너무 크고 웅장하니...

하산길 자꾸 돌아보며 오세암의 절터에 반해버리니...

 

영시암..

조선조 숙종 때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송시열 등이 반대를 하고 나섰고

김수항은 세자 책봉을 반대하는 등 왕에게 직언을 했다가 남인들의 공격을 받아 철원으로 귀양가 죽고

김수향의 큰아들도 사사되자 셋째아들인 김창흡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명산순례에 나섰는데

설악산 수렴동 계곡을 들렀다가 빼어난 산과 물에 반해서 머물게 되었는데 바로 김창흡이

한을 달래며 흐르는 계곡물에 괴로움의 눈물을 씻던 곳을 영시암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영시암은 길(), 화살(), 암자()를 써 속세와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목어...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

범종...만물을 꺠워 세상을 밝히다..

운판....하늘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법고 ... 땅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미시령에는 이미 겨울이되어 첫 눈이 내리고...

백담사 방향의 하산길은 이미 겨울을 맞이할 단풍들이 반겨주네..

 

 백담사 하산길의 절정의 단풍들....

 

에메랄드빛 이라고 해야되나??비취색이라고 해야되나??

맑고 깨끗한 물.....ㅎㅎㅎㅎ

 

백담사 계곡의 돌탑...

비가 많이 오면 사라졌다가 또 다시 돌탑으로...ㅎ

사라지고 쌓이고 사라지고 쌓이고..

유독 돌들이 흰색이라....

 

 

백담사...백개의 연목이 흐르는 소리..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피해 머무르며 명소가 된 듯하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찾아들었던 백담사는 관광버스가 산길을 오가는 번잡스러움이 조금은 거슬린다.

백담휴게소에서 운행하는 용대리 셔틀버스도 탈려면 줄을 서야하고...

겨울에는 셔틀버스도 다니지 않으니 조용히 운동삼아 다녀 갈 수 있기도..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화재가 있을 때마다 주지스님의 꿈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분이

나타나 변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기이하게도 지금도 이 근처에 도포를 입고 말을 탄 듯한

암석이 솟아 있다.

거듭되는 화재로 절 이름을 고쳐보려고 하던 어느 날 밤,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潭]를 세어 보라고 하여 이튿날 세어보니 꼭 100개에 달하였다.

그래서 담자를 넣어 백담사라 이름을 고치는 동시에 지금의 장소로 옮겼는데,

담자가 들었기 때문에 그 뒤부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에서 100번의 웅덩이를 지나면 나타나는 자리의 백담사???.


여기서 부터 용대리까진 마을버스로 약 7km 정도 이동...

한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릴때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