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5차 산행(161008)
설악산 구간 : 공룡능선
☞ 교통편 : 제이캠프3차
☞ 코스 : 한계령 휴계소~서북릉삼거리~끝청1610~끝청갈림길~중청1665~중청갈림길~
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나한봉1297~마등령삼거리1260~비선대~신흥사~
3주차장: 23km..
지리산에서 북진하는 남한 백두대간 산행의 결정판 중 하나..
그하나가 지리 주능 종주 또하나가 이 공룡능선 일것이다..
산행일정이 잘 맞춰져인지 올해 가을은 지리산과 살악의 단풍을 2주 간격으로 느끼네..
약 24㎞ 거리지만 암릉이 많은 설악산을 남북으로 종주하기 때문이며
이제 진부령 까지도 얼마남지 않았다..
10월 단풍계절에 공룡능선의 산행객들의 행렬에 능선에서
빠져나오기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는 것...
한계령 휴게소…
한국건축가협회 대상 수상작 …
거대한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 속에부드럽게 안겨 있는건축물,
혹여 한계령과 설악의 경치를 보고자 하는이들의 눈길을 현혹시킬까 두려워
온통 검정으로만 칠해져 있는 외관, 남설악에 대한 탁월한 전망을 제시하는
휴게소 테라스 등 한계령휴게소는 겸손의 미학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다.
그럼으로써 가장 훌륭하게 자연과 어우러져 있으며,
미시령휴게소나 대관령휴게소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더욱 한계령휴게소가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
매번 무박산행이다 보니 새벽녁에 건축물 감상은 뒷전이고
서둘러 산행하기 급급하네...
현계령...
인제 읍에서 설악의 들목으로 만나는 원통(元通)은 본래 원통역(圓通驛)이
그 근원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이름 내력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흔히 우스갯소리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고 한다.
어떤 이는 한 임금이 설악에 파천(播遷)하여 도성으로 차사를 띄울 적에
매양 돌아오지 않으므로 생겨난 말이라 하나
그리 따를 만한 전설은 아니라고...
일설에는 첩첩산중 휴전선 근처로 배속받은 군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이라고도 한다.
명산이란 본래 유람에나 좋은 땅이지 터를 두고 살기에는 불편한 곳이다.
우리 일반 나그네들ㅇ랑 산꾼들 더없이 즐거운 설악의 풍광이지만
생계를 작정으로 산중에 깃든 민생들의 호구지책이야 논도 안되는 명승지를
어디에 쓰겠는가 마는
그래도 명산 그늘이라고 한껏 멋을 부린 이름이 바로 한계 마을이다.
한계는 풍진 영화를 한낮 베옷 품에 감추고 세속를 떠나던 마의태자의 전설이 곳곳에 서린 곳..
「신라김씨대종원」의 기록에는 '태자 일행이 서울을 떠난 것은
935년 10월 하순이고, 한계에 닿은 것은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 몰아치는
혹독한 겨울이었다'고 한다.
설악에서도 일출을 맞이하네..
다행히 비소식은 없고 10월 초이지만 색색 단풍들은 아직 어두워서 보이질 않고
찬바람과 컴컴한 주위는 한겨울 같기만 하다....
동해안의 해돋이...
삼척방향...
한계령에 시작된 된비알을 지나고 나니 어렴풋이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설악의 서북릉....
설악의 서북릉....
설악의 서북릉....
끝청 가기전 조망터에서본 설악의 서북릉....
끝청....1610..
끝청봉은 설악산 중청봉 서쪽에서 이어지는 서북 주릉상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동쪽으로 대청봉과 중청봉, 소청봉으로 이어지는 주봉을 조망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끊임없이 길게 이어지는 서북주릉을 바라볼 수 있다.
서북주릉의 능선이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끝청봉 직전에서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는데
이곳만 지나면 중청봉까지는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다.
중청 하신길에서 바라본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 대피소...
중청...1665...
설악산의 제2봉으로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는 주봉인 대청봉, 남쪽으로는 소청봉,
서쪽으로는 끝청봉과 각각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동해를 마주보고 있는것이 특징...
이쪽능선들은 날씨만 좋으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니...
산에서 바다 구경이라??
설악의 최고 봉우리 대청봉...1708...남한에서는 한라산, 지리산다음 세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정상은 심한 기온차와, 낮은 온도를 비롯해 강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낮게 자라 있어 설악산국립공원과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예전에는 청봉(靑峰)·봉정(鳳頂)이라 했는데, 청봉은 창산(昌山)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봉우리가 푸르게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공룡릉·화채릉·서북릉 등 설악산의 주요 능선의 출발점으로 내설악·외설악의 분기점이 되며, 천불동계곡·가야동계곡 등 설악산에 있는 대부분의 계곡이 이 곳에서 발원한다.
정상은 일출과 낙조로 유명하며, 기상 변화가 심하고 강한 바람과 낮은 온도 때문에 눈잣나무 군락이 융단처럼 낮게 자라 국립공원 전체와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눈으로 덮여 있고, 6, 7월이면 진달래·철쭉·벚꽃으로 뒤덮이며, '요산요수'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와 대청봉 표지석이 있다.
소청봉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공룡등줄기...
외설악 방향
외설악 방향...
외설악 방향...
외설악 방향...
소청봉...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실제로는 봉우리가 아닌
중청봉이 끝나는 지점의 언덕이다..
백담계곡과도 만나지고
봉정암....
서북능선을 타다보면 죄측편으로 용아장성과 암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바로 봉정암
여기서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1,244m)에 위치하는 암자..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봉정암은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 부속암자로 대표적 불교성지인
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하다.
해발 1,244m에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암자로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잠시 산행의 피로를 풀고 ???
이제부터 공룡의 등골속으로 빠져든다....ㅎㅎㅎ
휘운각 대피소..
양폭산장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지점이자, 무너미고개 바로 위에 위치한다.
원래는 고작 30명이 묵을 수 있는 조그마한 대피소였으며 그후 신관을 지어 70명까지 가능했다고..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으므로 설악을 등반하는 애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옛 희운각 산장은 산악인 희운 김태묵 씨가 사재를 털어 지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현대식 시설로 다시 지었다고하네...
공룡능선의 자태가 나타나며....
여기는 한장한장의 사진들이 모두 작품사진 같구나???
이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음속으로만 간직한다는 것도 큰 죄??
파란하늘과 기암괴석 그리고 단풍...참으로 아름답네...
계절이 단풍이 물든 가을이지만..
사계절 어느시간도 질리지 않을 풍광이네...
쥐라기 시대 살던 스테고사우르스는 초식공룡의 등뿔같이..
등에 뿔처럼 튀어나와 육식공룡 으로부터 자기 방어를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공룡의 등뿔속으로 지나고 있다고???
공룡능선의 시작은 희운각 대피소로 부터 시작 해서 6~7km 정도
본격적인 기암괴석과 단풍들의 축제라..
여긴 주상절리 같기도 하고..
보이는 곳 보여주는 곳 쉬는 곳 어디든지 포토죤이요 조망터라??
이래서 공룡능선을 찾는가 보다..
마등령을 뒤에 업고...
마등령 까지 갈려면 아직 ........
암벽 릿지도 해야하고??
내설악 방향...
설악이 자랑하는 천불동계곡 방향..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외설악 비경으로 공룡능선과 천화대능선 및 화채능선 사이로
계곡이 펼쳐 보이며, 계곡 양쪽으로 솟은 봉우리들은 각기 모습이 다른 천 분의 부처님 형상을
새겨놓은 듯하여 천불동이라고...물론 천불동 아래금강굴에서의 비경이겠지만..
여기 공룡능선에서 보도라도 과히 계곡의 멋진 포스를 생각나게 하네..
여기 저기 모두 조망이 뚜렸하다..
울산바위가 보이고 동해 바다가 훤하니 보이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을지??
이런 기암괴석에 뿌리를 박고 공존하는 소나무의 생명력에 감히 우리 인간들은 한번쯤
지나온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 생각을 해봐야 할것 같다
마등령 삼거리..
마등령...馬等嶺 1320m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5만 지도에도 馬等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옛 기록에는 모두 麻登嶺으로 속초의 [설악산뿌리]에도 마등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산이 너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서 올라야 오를 수 있다 하여 유래.
설악산 대청봉까지 공룡능선이라 부르는 암릉의 기점..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함께 태백산령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
지금은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 백담계곡과 동해로 흐르는 천불동계곡의 비선대를 잇는
대표적 등산로이며 설악산국립공원의 중심부로써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청봉의 조망이 일품이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내려서면서 고도를 조금 만 낮추면 단풍들의 정글 숲이라...
절정의 단풍들..
아마 몇주후면 이 설악도 겨울일 것이고...
이어지는 구간도 겨울 산행 대비를 해야 할것 같네..
금강굴을 지나 비선대...
된비알을 역으로 내려오니 금강굴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금강굴...
금강굴은 자연동굴로 1300여년 전,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나오바리..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금강삼매경론의 머리를 따라 금강굴이라 했다고..
설악8기중의 하나...
금강굴의 유래...
1. 원효대사가 금강굴에서 수도를 했는데 금강경을 만들었다. 금강경 원문 속에 금강이란 말이 있기 때문에 이 굴을 금강굴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금강경을 알기 쉽게 금강소를 지었을 뿐이다.
2. 이와 달리 금강(金剛)이란 것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금강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진짜 완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제석천(帝釋天, 관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응신술을 갖는데, 동자 대장의 모습 등 서른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이라는 부처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금강이라 한다. 결국은 관음보살이다. 지팡이는 모든 사악한 잡귀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무기다. 금강굴은 높고 아주 험한 곳에 있어 다른 것들이 접근하기 어려우니, 누가 범접할 수 없는 곳, 진수 중에 진수. 그래서 이곳에서 도를 닦으면 도통할 수 있다 하여 금강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비선대...
설악산을 가장 대표하는 곳이라면 서슴지 않고, 천불동계곡을 꼽을 수 있다.
설악의 모든 절경이 이 천불동 안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불동계곡은 설악동에서 와선대, 비선대, 양폭산장을 거쳐서 죽음의 계곡 직전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일천의 부처가 늘어서 있다는 이름의 이 계곡에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와선대를
비롯해 비선대, 금강굴, 장군봉, 귀면암, 오련폭포, 양폭, 천당폭 등등..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간길 산죽과 싸우며 조망도 보여주질 않다가 대간 접속 구간에 이러한 행운을 만나니..
이렇게 보여주는 이렇게 세월을 지나며 나를 기다려준 자연에 감사 한다..
와선대는 천불동계곡을 찾아드는 입구, 신흥사 서쪽 4km 지점에 있으며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천연의 암반대석으로 옛날 신선이 놀던 곳이라 한다.
신선이란 것은 급한 여울의 이름으로, 이 와선대의 반석은 높이가 약 3척, 폭이 약 10여간이
되므로 여기서 70~80명의 사람들이 앉아 놀 수 있다.
전설에의하면 옛날에 이 바위 위에 손톱이 긴 늙은 선녀인 마고선이 신선들과 함께
석대 위에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서 동천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하여 와선대라고 불리운다.
신흥사..
◆[설악산] 1708m...퍼옴..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霜嶽]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雪嶽]라고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오대산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
백두대간의 한계령-공룡능선-미시령을 중심으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 속초지역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 5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산
동국여지승람의 양양도호부편에 "설악은 부의 서북쪽 50리에 있는 진산이며 매우 높고 가파르다. 8월에 눈이 내리기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라고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때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산이었다. 인제현편에는 오늘의 장수대 부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수록되어 있다. "한계산. 현의 동쪽 50리에 있다. 산위에 성이 있다(한계고성을 말함). 냇물이 성안으로부터 흘러나와서 곧 폭포를 이루어 내려가니 흐름이 수백척의 높이에 달려있으므로 바라보면 흰무지개가 하늘에서 드리워진 것 같다.(대승폭을 말하는듯) 원통역으로부터 동쪽은 좌우쪽이 다 큰 산이어서(서북릉과 가리봉을 말함) 동부가 깊숙하고 산골물은 가로세로 흘러서 건너는 것이 무려 36번이나 된다(한계천과 자양천을 말함). 소나무와 잣나무가 모두 높아서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다. (오늘날에도 이런 나무들이 많이 남아있다). 또 그 남쪽에는 봉우리가 절벽을 이루었는데 그 높이가 천길이나 되어서 기괴하기가 형언할 수 없다(하늘벽을 말함)"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같이 금강산에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설악산이 우리의 레저문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말부터이다. 지금 설악산은 국내등산과 레저를 운위할 때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이며 연간 수백만명이 계곡과 능선, 암벽과 빙폭을 누비는 레저활동의 메카가 되었다. 레저를 알며 즐기는 연령층의 대부분은 일출이라면 대청봉, 빙폭이라면 토왕성, 암릉종주라면 공룡과 용아장성, 능선종주라면 미시령에서 한계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안산에서 대청에 이르는 서북능선을 떠올린다. 폭포와소라면 대승폭과 12선녀탕, 계곡산행이라면 내설악 구곡담, 가야동, 암벽산행이라면 천화대, 눈사태라면 설악을 떠올린다. 4계절 어느 때 찾아도 찾는 이에게 깔끔하면서도 장중한, 그러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한 설악산의 얼굴은 다양하기만 하다.
- 설악의 8기
* 천후지동(天侯地動) - 하절기면 비가 많이 내려 뇌성이 일어나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하늘이 온통 찢어지듯 울부짖고 땅이 갈라지듯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의 신비와 울림의 기이로움.
* 거암동석(巨岩動石) - 흔들바위와 같은 거암괴석이 움직이는 신기로움
* 백두구혈(百斗毆穴) - 북면 용대리 외가평에서 백담사로 가는 백담계곡에 하식작용에 의해 구휼을 형성하고 있어 학이 날아간 흔적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구휼의 기이함
* 전석동혈(轉石洞穴) - 외설악의 계조암은 대표적인 전석동혈로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있어 하나의 자연동굴을 이루고 있는 신비로움
* 수직절리(垂稙節理) - 암질과 구조의 차이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이루어져 내설악의 12선녀탕, 하늘벽과 같이 험준한 지형과 외설악의 천불동계곡등, 모두 신비롭고 다양한 절리에 천태만상의 형상
* 유다탕폭(有多湯瀑) - 12선녀탕과 같이 쏟아지는 물에 반석이 패여 큰 바위획이된 탕의 기이함
* 금강유혈(金剛有穴) - 비로봉의 금강굴과 큰석산에 구멍이 생긴 기이함
* 동계설경(冬季雪景) -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쌓이고 쌓여 11월부터 3월까지 백설이 만연하다.
- 설악의 8경
* 용비승천(龍飛昇天)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며 최장인 대승폭포를 비롯하여 쌍폭, 소승폭포,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육담폭포, 오련폭포, 천당폭,독주폭포등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물줄기가 낙하하고 무지개가 발생하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것 같이 황홀하며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승하는 듯한 선경이 장관이다.
* 설악무해(雪嶽霧海)
하절기이면 산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안개에 쌓여 구름위에 솟아있는 대청봉의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며 또한 안개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산봉우리에 앉으면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해 그 조화는 8경중 제일이다.
* 칠색유홍(七色有紅)
겨울철에 쉬지 않고 낙하하는 폭포수에 햇살이 반사되어 비수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발생하고 또한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 홍해황엽(紅海黃葉)
만산에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누런 잎에 쌓여 골짜기마다 금수강산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선경이다.
* 춘만척촉(春滿擲蜀)
대청봉 남측에 발달한 진달래와 철쭉군락을 비롯하여 백화가 온 산을 덮어서 4월에서 7월이면꽃들이 만발하여 가득하니 상상 할 수 없는 진경이며 비길때 없는 풍경이고 행인의 눈을 어리게 한다.
* 월야선봉(月夜仙峰)
가을 밤하늘이 밝을때 둥근달이 중천에 뜨면 기암괴석의 모습이 난무하는 선녀같이 보이는 절경은 설악팔경에 빼놓을 수 없는 야경이다.
* 만산향훈(滿山香薰)
춘삼월부터 산천초목이 소생하면 그윽한 향기가 산에 충만하며 바람이 불면 향긋한 냄새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데 특히 대청봉, 화채봉, 오색계곡에 발생하는 눈향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보는 풍경도 좋고 여흥을 돋구어 준다.
* 개화설경(開花雪景)
겨울철이 오면 온산이 흰색으로 물드는데 나무나 기암절벽에 눈이 쌓이면 온갖 형태의 눈꽃이 피어 절경을 이룬다.
지명해설...퍼옴...
[용아장성] 龍牙長城
봉정암 사리탑을 기점으로, 동으로는 가야동 계곡과 만경대, 공룡능선을 거느리고 서로는 수렴동, 구곡담 계곡을 끼고 서북 주릉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내설악의 그 중심에 자리한 용아장성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봉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있다.
용아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용아장성은 험하고 날카로운 산세로 인해 숙련된 클라이머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절에 관계없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항상 출입금지구역이다.
◆[공룡능선] 1708m
나한봉-큰새령-1275봉-범봉(천화대)-신선대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 불린다. 공룡릉은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리킨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옛 문헌을 보면 지금의 대청봉이 있는 양양, 속초의 산만을 `설악'이라 제한하였고 귀때기청봉이 있는 인제쪽의 산을 `한계산'이라 따로 지칭했다. 그 예로 안산 남쪽 장수대 부근에 있는 한계산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진부령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북주능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수많은 암봉들로 구성된 공룡능선인데 이 코스가 바로 북주능의 등뼈 역할을 하는 공룡능선을 가장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능선은 1963년 겨울, 당시 한국의 암벽등반 선구자이던 선우증옥, 정규현, 채태웅씨 등이 처음으로 완등한 이후 산악인들로부터 각광을 받다가 최근엔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등산로가 잘 닦여있다.
공룡능선(恐龍稜線).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장쾌한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약 8㎞에 이르는 암릉길로 오른쪽 동쪽으로 외설악, 서쪽으로 내설악을 구분짓는 설악의 대표적 능선이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나한봉]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첫 봉우리다. 정상부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암릉을 이룬다. 등산로는 누운 향나무의 뿌리들로 빼곡하다. 나한봉 정상에 서면 1275봉과 천화대가 바로 앞에 펼쳐지며 멀리 대청봉과 서북릉이 검푸른 모습으로 하늘과 경계선을 긋는다. 서북릉 앞으로 한줄기 험악한 산자락이 길게 늘어지는데 이것이 용아장성릉이다. 안개에 잠긴 내설악 백담계곡이 거대한 호수가 되어 숨죽이며 출렁인다. 외설악 화채능선의 끄트머리에 암봉군으로 형성된 집선봉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다. ‘나한’은 불교용어로 ‘오백나한(五百羅漢)’의 준말이다. 나한봉은 뽀쪽뽀쪽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수많은 (약 500개로 헤아려짐) 봉우리가 좁게는 서쪽 아래에 세워진 오세암을, 넓게는 마귀로부터 사바세계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마고선녀(麻姑仙女)가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는 비선대 앞에 있는 장군봉(혹은 미륵봉) 중턱 해발 600m 지점의 암벽 한 가운데 있다. 경사가 급해서 굴까지는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콘크리트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굴의 크기는 7평쯤 되며, 굴 속의 토기 등 생활용구와 석불좌상으로 보아 고승이 도를 닦던 곳으로 짐작된다. 굴까지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설악 8기중의 하나다.
[권금성] 權金城
옛날에 설악산에 權氏와 金氏의 천하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나서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피난갈 곳을 찾아보니 산속이라 산 위밖에 없어, 산 위로 달아나니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결국 둘이 의논한 끝에 성을 쌓기로 했다. 그러나 주위에는 큰 돌이 없고 산 아래 강가에 있었다. 그래서 권장사는 밑에서 돌을 던지고 김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기로 하여 며칠만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권·김 두 장사가 쌓은 성이라고 해서 그 이름이 권금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 오르면 외설악의 절경과 동해의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 보인다
설악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권금성이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진 고려시대 산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에 따르면 설악산 케이블카 종착지인 봉화대 주변에 성곽의 일부분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던 권금성 일대가 내성과 외성을 겸비한 총 연장 4,990여m의 대규모 연곽식산성(連郭式山城)인 것이 2008년 7월부터 12월까지 벌인 권금성 학술조사 결과 확인됐다.
권금성의 특징은 산성으로 접근하는 적의 통래를 파악하는데 용이하게 내성의 북벽과 외성의 동·서벽에 작은 망대를 세운 것으로 원주 영원산성, 춘천 삼악산성, 충주 대림산성 등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또 축성 시기는 양양 진전사와 낙산사에서 출토된 물고기 문양 기와류 및 비슷한 유물이 다량 발견돼 몽고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던 시기에 외적의 약탈을 피하기 위해 축조된 뒤 조선 초기 외적의 침입이 수그러들면서 효용성이 사라져 폐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낙산사 승려였던 익장의 낙산사기에 기록된 고려 고종 40년(1253) 축조설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 권금성과 달맞이꽃 구비 전설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삼국시대 때 고구려 보장왕을 왕으로 올려 놓고 연개소문이 정권을 손아귀에 놓고 정권을 해 가는 무렵이었어요.
그때 당시에 그 권씨, 김씨 양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서 역적으로 몰은 적이 있어 가지고 그럼 그분들이 고구려 역적으로 몰았으니 붙잡히면 죽을 꺼고 그러믄 신라로 도피를 해 가지고 신라에 와서 저 권금성이라고 하는 저 산 꼭대기 해발 860m 정상에 올라 가서 거기서 인제 그 권, 김 양 장군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난세를 피하기 위하여 성을 축소하고 난을 피하고, 난세를 피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부하들을 시켜 가지고 저 정구평을 지나면 촛대바위라고 있습니다. 촛대바위라고 하는데 거기는 봉화대, 그 봉화대를 일러서,
"이 골을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봉화불을 올려라."
그게 전화보담 빠르지요. 그래서 거기 봉화대로 한 때는 불려 오고 그 군량장이라고 하는 데는 군량미를 갖다 저장하고 군량미를 저장해 가지고 그게 인제 권금성으로 쭈욱 올라가고 금강굴에도 그 금강굴이 결과적으로 마적굴이라고 마적굴이야. 마적단이 있는 굴.
그 양양고을 원 이도은씨가 그 원을 할 때 양양 고을을 털어다가 군량미를 갖다 저장해서 권금성을 올리고 금강굴로 옮기고 그러면서 난세를 피하고 그 난을 우리나라에 들어와, 권금성에서 난을 피했다고들 합니다.
그때 당시에 그 내려오는 전설이지만 그 권장군이라는 그 장군은 그 부근에 그 막사 부근에 어느 여인이 나타나서 낮에는 나타나지 않고 밤에만 나타나서 이렇게 뱅뱅 돌고 돌아댕겨. 권금성으로 돌아 댕기면서 그 사랑을, 마음의 사랑을 하면서 돌아 댕기는데. 그 낮에는 어디 풀 속에 숨었다가 밤에는 저녁마다 그렇게 아주 쉴새없이 매일 빠짐없이 비가 오나 그저 언제든지 이래 돌아 댕기다가 결과적으로 지쳐 가지고 그래 그 이튿날 아침에 그 부하들이 와서 대장한테 문안 드릴려고 와 보니 웬 여인이 하나 죽었거든. 그 여인은, 대장이 하는 말이, "그 여인은 저 풀 속에다 갖다 묻어라." 그 여인을 풀 속에다 갖다 묻었는데 그 묻은 자리에서 웬 풀씨가 나와 거름이 되어 잘 커 올라오더니 꽃이 밤에 피었다가 낮에는 지며 노란 꽃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달맞이꽃이라고 해서 달맞이 꽃은 낮에는 피지 않고 밤에 피어가지고 밤새도록 반기다가 낮에는 시들어지는 게 달맞이 꽃이, 그래서 달맞이 꽃이 생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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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이 왜 아름답다고 했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세..
자신의 마음이 청결할때면
산은 더 없이 맑게 해준다..
인간이 걱정을 안고 산을 다닐때면
그 산은 걱정거리를 품어 준다..
이백년도 못살던 인간이..
보이는 만큼,갈수 있을만큼만
아낌없이 내어준다..
만약에 이 산이 없다면??
우리들은 어디를 동경하며 가야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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