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6차산행(160508)..
태백산 구간 : 두타산(태백산권)
☞ 교통편 : J-Camp
☞ 코스 : 댓재810~햇대등~1032봉~통골재~두타산1357~박달령1100~문바위재~학등~
청옥산1405~연칠성령~고적대1357~갈미봉1260~이기령~상월산970~원방재~
백복령780 : 28.7km..
대간 구간 중 악명 높기로 유명 하며
두타,청옥,고적대 세개 봉우리는 동해안을 따라 위치하고 있어 해동삼봉 이라 불린다..
산 코스는 암벽과 노송의 하모니 구간과 육산을 골고루 느낄수 있으며
매우 아름답고 장쾌하며 신비로움 까지 갗추고 있다..
두타,청옥,고적대에서 체력을 거의 소진 시킨후..
원방재 부터 백봉령 까지의 준비된 5개 정도 800고지 이상의 무명봉 행렬에 거의 녹초가 된다...
아하??? 그래서 상급 코스구나??
특히 이구간은 동고서저의 형태가 뚜렷하다.
댓재
옛날 이름은 죽현,죽치령..
대나무가 많다고..
두타산의 산신령을 모시는 산신각이 있고..
이고개를 넘으면 죽헌천,하장면 번천으로 갈수 있다고...
햇댓등...
아직 일출은 시작 하지 않은듯..
산신제를 지낼때 산신이 강신하기 좋은 곳에 횟대를 세우는 의식..
횟대란 두개의 대나무를 잘라
꼭대기에 오색천을 걸어두었는 것.. 경상도의 햇대로 ....
두타산..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
두타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하니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인거 같다
사실 명산은 유명한 절을 품고 있더이다
청옥산보다 50m 정도 낮다..
두타산 과 청옥산을 잇는 6km 구간은
거대한 횃대 같아서 의가등..옷걸이..
또한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다고..
TV에 많이 나오는 석장암동의 무릉반석..
1500평의 너럭바위..봉래 양사언..
지금 난 산마루금을 지나지만
무릉계곡으로 이곳을 오를때면 숨은 비경에 흠취 될거같고...
산세로 보아 땀은 몇바가지 흘려야 할듯..
청옥산 가는 길...
박달령...
박달고뎅이라 하기도 하며 두타산에서 50분 거리 정도...
이러한 명칭이 많다
선달산 넘어올때의 박달령이 생각나네
이 아래로 내려서면 무릉계곡으로..
문바위...
학등...
박달령에서 청옥산 정상쪽 반지점을 지나서 완만한 능선..
청옥산..
육백마지기..
능선이 비교적평탄한 지형에 면적이
6백 두락이나 된다는 뜻..
보석에 버금가는 청옥이 발견되고 약초가 많이 자생한다고..청옥산..
하지만 난 약초를 모르니 '그런가 싶다' 라고만....
아미타경의 7가지 보석 중 청옥은..극락을 의미
이 땅에 있는 극락의 세상이라...
청옥산 샘물은 말라있더이다...
가장 존경하는 대간 선배님들...
이분들은 대간을 이미 마쳤지만 우리들의 길잡이를 해주시는 분 들이다 ..
항상 감사드리며 존경합니다.
청옥산 정상석 뒷편에 있는 오래된 비석 같은데 한문인지?? 해석 해주신다.@@@@
두분 선배님들의 초상권을 허락하여 블로그 올림...ㅎㅎ
남대장님은 산악마라톤선수 또 한분은 백두대간 삶의 애환을 가르쳐 주시는 대간 역사 선생님....
이번 강풍에 주목이 넘어지고...
연칠성령..난출령
험준하여 빠져나가기 어려움 이란 뜻
즉 여기서 탈출하믄 엄청 힘든다..ㅋ
정상을 망경대 라고 하는데..조선 택당 이식 이라는 분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 후 이곳에서 서울을 사모하여 바라보았다고...
요즘은 서울쪽에 계신 임금님을 바라보았다고 망군대 라기도 한다..
고적대..
신라 의상대사님 나오바리...
동쪽으로 뻗혀진 청옥산,두타산을 아울러 해동삼봉 이라고..
신라 스님 의상대사 가 수련한 곳
이코스 최고의 전망터 이며 정상석 주위가 매우 좁다..
스님이 계신곳이라 약초 들이 많것네..
우보 선생님과 함께....
포토죤이네..전망대에서
모처럼 열린 하늘을 안고 싶어서...
참으로 인간들의 다리가 참으로 대단하다..
뒤를 돌아보며 지나온 길들을 볼때면...
내가 어찌 이길을 지날 수 있었을까???
대견스럽기도 하고 미친 넘 같기도 하고...ㅎㅎㅎ
갈미봉..
급경사를 내리며 주목, 철쭉나무군락을 지나 몇개의 암봉을 지나야 나타난다
좌측 수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분기하는 마지막 봉우리..
노적가리 볏가리와 같이 꼭지가 우뚝한 형태를 표현하는 우리말이다.
갈은 가리의 준말이다.
미는 꼬리 혹은 끝이라는 뜻..
무릉계곡 연이은 봉우리들의 끝...
우보 선생님과...
이기령..810
동기 라는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에서 유래..
이기령 옛길은 구한말 백봉령 도로가 생기기전까지 삼척에서 정선을거쳐 한양으로 소금을지고
다니던길이라 한다..
요즘에는 호랑이 가 없으니...
이기령 대간설명....
신상월봉..고목나무
이기령에서 급하게 오르며..
무수히 많은 조릿대 군락,싸리나무,철쭉가지와 씨름하다보면 나타나는 헬기장...
헬기장 정상 삼각점이지만 정상이 아님..
짝퉁 정상 이라고 해야되나??
가파른계단과 로프구간을 지나
숨이 턱까지 찰때쯤이면 쓰러진 고목나무가 와 나무의자가 있는 곳이 상월산 정상..
정상석은 없고 깃대만..
여기가 상월산 정상..
바위와 노송...
원방재,부수배리
상월산 정상에서 한참을 내려선다..
원방은 먼지방 또는 먼곳을 뜻한다
먼 거리의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던 고개..
부수베리의 부수는 부싯돌, 베리는 벼랑 이라는 뜻으로 부싯돌을 벼루는 곳,
부싯돌 마을 이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부터 이구간의 유명세가 나타난다..
두타,청옥,고적대에서 힘을 빠지게 한 후...
백봉령 까지의 나머지 7km구간의 무명봉??
대략 900 미만 고도의 5개정도의 봉우리는 바닥난 체력에 더욱 무거워 진다..
원방재 지나서 반대측에서 보면
동양화의 극치라...
무명봉에서 바라본 상월산..
저곳을 넘었단 말인가??? 휴
암벽 틈에서 뿌리를 내려 이제 한몸이 되어 버렸네...
비,바람과 추위와 눈을 이겨내며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으로 보이네...
말이 2.4km....
체력이 바닥난 터라 한참을 가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헬기장이 나타나고...
이런 봉우리를 몇개나 더 지나야 된다니...ㅎㅎㅎ
이제 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친 심신에 가도 가도 끝이 업다는걸??
고도가 내려가니 철쭉 무리가 날 위로해 주네...이제 다 왔다고...
백봉령..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고개로 옛 조상들의 애환이 있던곳
한약재 백복이 많이난다고 해서 그렇지만 결국은 박봉령으로 발음상의 문제이네...
모처럼 열린 하늘...
단지 하늘을 안고 싶을 희망 이라도...
여기까지가 태백산권...
오대산을 만나러 가야지...
정선 아라리...
우리 낭군 소금 사러 백봉령 넘어 강릉 삼척 갈때..라는 말도 있고
정선 소금 장수의 단지밥..
소금장수가 민가에 방을 얻어 잘때 그 집식구들만 먹는 한솥밥은 절대
퍼주질 않아 마당가에서 작은 오갈단지로 따로 지어 먹던밥을 단지밥 이라한다..
물론 반찬은 소금반찬..서민들의 애환이 묻어 있는 밥..
퍼옴..제이캠프3차 ..우보 선생님
두타산...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한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이 산은
그 형상도 부처가 누워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탓일까 이 산은 삼척시의 영적인 뿌리가 되는 산이며 신앙의 대상이기도 한 산이다.
예로부터 가뭄이 심하면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두타산(135.2m)은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무릉계곡 남쪽으로 태백산군
서쪽으로 중봉산 12당골이 있다.
두타는 벗다 씻다 닦다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를 음차한 것으로 부다는 출가수행자가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정각을 이루기위한 수행법으로 두타행을 강조했으며
수행자가 따라야할 열두가지 수행방법의 십이두타행(十二頭陀行)이다.
십이 두타행이란?
수일식법(受一食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재아난약처(在阿蘭若處) 인가를 떠나 산이나 한적한 곳에서 거처한다.
상행걸식(常行乞食)항상 밥을 빌어 먹는다.
차제걸식(次第乞食)빈부를 가리지 않고 걸식한다.
절양식(節量食) 발우 안에 든것만으로 만족함
중후불식(中後不食)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는다.
착페납의(着弊納衣) 헌옷을 빨아 기워 입는다.
단삼의(但三衣) 승가리 울다가리 안다희 이옷들 밖에 두지 않는다.
총간주(塚間住)무덤 곁에 있어며 무상관으로 편리케함
수하지(樹下止) 있는 곳에 애착을 여의기 위햐여 나무밑에 있는것
로지좌(露地坐) 습기가 없는 노지에 앉는다.
단좌불와(但坐不臥) 앉기만하고 눕지 않는것과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연단하는
불교의 수행법을 이른다.
두타 청옥 고적대를 걷는 길은 세상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멀리한 정진의 길 수행의 길이다.
이길에도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있었다.
두타산 동쪽 두타산성은 신라 파사왕 23년(102년)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산성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이곳에서 임진왜란때 의병과 피난민들이 웅거하면서 이 지방으로 처들어온 왜군 5000명을
물리치면서 이 전투에서 왜군이 9활정도 죽었고 우리 의병과 민초의 피해도 5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피난간 일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피를 흘리면서 싸워 이기기는 하였지만 두타산성 아래
무릉계곡은 피로 물들고 산아래 삼화동의 소까지 붉게 변했다고 한다.
두타산과 쉬움산 사이의 계곡이 피내골 산성 맞은편 골짜기가 피마른골 삼화동 소가
피소로 불리게 된 연유도 이 때문이다.
이 산의 비극은 한국전쟁 때도 이 일대에서 격전이 벌어졌고 수 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어나간 곳이다.
이곳에서 인민군 병참기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미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기도 했다.
두타산성 정상 쉬움산에는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
오십정(우물)을 비롯하여 많은 명승고적을 지니고 있고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옛 선인들은
이 산을 가리켜 금강산에 버금가는 관동의 군계일학이라고 칭송했다.
청옥산..
정상에 약 30m 떨어진 곳에 비석이 하나있다. 그 비석에는 두타산을 비롯하여 주위 산군들을
한문으로 내역을 기술하였는데 현대인들은 잘 알아 보지 못할것 같다.
정상석도 하나 더 있었다.
청옥산으로 발걸음 옮겨놓았다. 길옆으로는 야생화 흐드러지게 피여있고 철쭉은
이제 막 봉오리를 피울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박달령 지나 청옥산에 올랐다.
청옥산(靑玉山1403,7m)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타산 고적대와 함께 해동삼봉(海東三峰)으로 불리는 산이다.
청옥이 발견 되었다고 하여 얻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청옥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보석이다.
청옥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을 상징하는 일곱가지 보석중 하나이다.
일곱 가지 보석은 금,은,수정,마노,적진주,호박,그리고 청옥이다.
청옥은 곧 극락을 의미하므로 이 땅에 있는 극락의 세상이다.
이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이요 두타행이다.
다시 말하면 두타산 지나며 부처의 가르침대로 마음과 몸을 닦은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산이 바로 극락의 세계인 청옥산이었던 것이다.
두타의 길은 청옥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타와 청옥은 하나이다.
하나의 길이고 하나의 산이며 하나의 세계이다.
험준한 일곱 산등성이 일곱 별처럼 연이어 있다하여 붙은 연칠성령(連七星嶺)에 도착하였다.
또한 란출령(亂出嶺)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험하고 멀어서 빠져 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망군대(望君臺)라고도하는데 이는 조선조 광해군때 재상을 지낸 택상 이식(李植)이
정계에서 은퇴해 중봉산 단교암에 머물면서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면서
나랏일을 걱정 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도성의 임금을 바라본다는 望君 또는 한양을 바라 본다는 망경이라는 의미를
붙였다고 한다.
한양을 바라보았다는 망군대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다.
고적대 오르는 길은 가팔랏다.겹겹이 쌓인 바위길 오르며 산과 하나된 듯 했다. 나무뿌리와 밧줄도 나를 산과 하나로 묶고 있었다.이 험한길을 오르고 나니 고적대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중략-
갈미봉(曷味峰1271m)은 노적가리 볏가리와 같이 꼭지가 우뚝한 형태를 표현하는 우리말이다.
갈은 가리의 준말이다. 미는 꼬리 혹은 끝이라는 뜻이다.
무릉계곡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연이은 봉우리들의 끝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한강의 지류인 송천이 이 곳에서 발원한다.그런가하면 정선 아리랑(강원유형문화제)의
발상지인 아우라지가 정선쪽으로 내려가면 있다.
-중략-
이기령(耳基嶺810m)은 이 고개가 귀의 형곡을 닮았다하여 이귀령이라 하였는데
이 고개 아래에는 이기동이라는 마을이있다.
동해 곤로동과 정선 부수베리를 잇는 고개이다.이 고개는 등짐이나 봇짐을 지고 이 장터
저 장터를 돌며 떠도는 장돌뱅이들에게는 한많은 애환의 길이며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과거보러가는 선비들에게는 희망의 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길을 지나며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나가면서 돌맹이를
하나 둘 씩 던져 놓은 돌탑이 여러개가 있고 돌탑 옆 얼마 안가서
호식총(虎食塚)이 하나있다.
호식총은 호환을 당한 무덤인데 지금부터 오래전 이 곳에는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고한다.
그리하여 호랑이게 물려 죽은 사람의 신원은 알지못하지만 그의 혼을 달래기위하여
이 무덤을 만들어 놓았던것으로 보인다.
-중략-
백봉령은 강릉 동해 정선 3개 시군 경계지역으로 42번 국도가 지나고 정선 강릉을 가르는 마루금에 아라랑의 고장 정선을 알리는 표지석있다.삼척지방에서 소금을 지고 넘나들던 소중한 길목으로서 정선엮음 아라리중에서 ,,,
우리댁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고 찌거매고 장치다리 곰베팔이
헐께눈에 노가지나무 뻐덕지개 부끔떡
세쪼각을 세뿔에 바싹매달고 엽전 석냥
웃짐지고 강릉 삼척으로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구비 부디 잘 다녀 오세요,,,,,,중략
이와같이 이 험한길을 보내놓고 아무사고 없이 잘다녀오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한 많은 정선사람들의 애환의 길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강릉 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정선에서는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소금으로 생활 하였다.그러므로 백복령은 소금이 넘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였다.
택리지에는 백봉령(白鳳嶺)아라 했고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편에는
백복령(百福嶺)이라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희복현(希福峴)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와같이 옛 문헌과는 달리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는 백복령(白伏嶺)이라고
엎더릴 복자를 써고 있다.
이 이름은 일제에 의해 바뀐 이름이다.뜻을 풀이하면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고개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국립지리 정보원은 하루라도 빨리 바른 표기를 해야 할 것이며 이 곳의 이정표나
표지석도 고쳐 주기를 바란다.마침..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일본 노무새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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