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2차산행(160814)
태백산 구간 : 점봉산(설악산권)
☞ 교통편 : J-Camp
☞ 코스 : 한계령920~필례약수삼거리~망대암산1231~점봉산1426~단목령855~
북암령940~조침령770~진동리:총23.1km
설악산권으로 입성...
단목령의 비탐방구간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이 구간을 남진으로...
계속이어져 산행하면 더욱더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었을 건만
대한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내나라땅에 마음대로 못 가보는 것도 아이러니 하니..
한계령...寒溪嶺 1004m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 또는 오색령이라고 했다.
이중환의 택리지 산수총론에 보면 백두대간 여섯령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철령, 추지령, 연수령, 오색령, 대관령, 백봉령...
오색령이 지금의 한계령이다.
굽이굽이 산길엎을 휘몰아 도착하지만 정상부에는 운무로 가득하니 오늘 오후는
엄청 덥거나 소나기 한판이 기대된다...
이정표를 따라 필레 약수 입구 측으로 내려감..
망대암산...望對岩山 1236m
필레약수터에서 망대암산의 산길은 고행의 연속이라
강원도 산의 백미라고..하나 1000고지 이상이니 자연히 해발보다 온도차가 난다.
생각컨데 여름삼복더위 산행은 강원도가 제격일 것이다..
태백산맥 설악산 군봉(群峰) 중의 하나로,
북동쪽에 최고봉인 대청봉, 남쪽에 점봉산, 남서쪽에 시선봉(侍仙峰) 등이 같은
산체 안에 있는 형제봉으로서 삼각형을 이루어 대좌하고 있다.
산은 정상이 첨봉(尖峰)이고 망대암과 금표암 등 기암괴석으로 덮여 있다.
소양강과 양양 남대천의 분수령으로서,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좁고 긴 협곡과 폭포, 벽담(碧潭)을 이룬 데다 삼림이 울창하여
설악산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룬다.
점봉산 능선에서 발원한 천이 여신폭, 12폭, 선녀탕등의 명소가 되어 주전골이
오색약수를 경유 남대천으로 유입된다.
주전골 바위굴에서 사전(私錢)을 주조하려고 놋그릇을 부셔 위조주전을 만들다
적발되어 이후로 이곳을 주전골이라 하였다.
망대암산은 이를 감시하던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점봉산
박달령 마루턱에서 서북쪽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점봉산이다.
옛이름은 덤붕산이다.
‘덤’은 둥글다는 뜻으로 이것이 한자화하면서 점봉으로 변한 것이다.
또한 부드러운 육산과 날카로운 암봉이 조화를 이룬 점봉산은 등벙산 또는
등붕산(登朋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중 남설악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을 오르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북동쪽에 대청봉이 있고, 북서쪽에 가리봉, 남서쪽에 가칠봉 등이 솟아 있다.
산의 동쪽 비탈면을 흘러내리는 물은 주전골을 이루어 오색약수를 지나
백암천에 합류한 뒤 양양의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산자락에 12담계곡·큰고래골·오색약수터·망월사·성국사터 등 명소가 많으며,
오색약수를 거쳐 오르는 주전골은 단풍명소로서 흰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물과
단풍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등산로는 약수터와 온천이 있는 오색에서 시작하고 정상에 오르면
대청봉·가리봉 등 설악산의 영봉과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일대에 펼쳐진 원시림에는 젓나무가 울창하고, 모데미풀 등 갖가지 희귀식물을
비롯하여 참나물·곰취·곤드레·고비·참취 등 10여 가지 산나물이 자생한다.
특히 한반도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이 맞닿는 곳으로서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점봉산의 총체적 가치는 이곳이 한반도에서 자라는 식물의 남북방한계선이 만나는 곳이라는 점..
부드러운 육산과 날카로운 암봉이 조화를 이룬 점봉산은
등벙산 또는 등붕산(登朋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정상에 올라 설악의 장대한 연릉과 동해바다의 드넓음을
조망하는 것은 점봉산 산행의 백미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주전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12담 구곡으로도 불려지는 주전골은 옛날 위폐범들이 계곡에서 불법으로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금강초롱...
이 삼복덕위에 유별나에 많이 자생하고 있네..
다른 꽃은 잘 모르겠고...ㅎ
단목령으로...
단목령 지킴이들이 지키고 있을까?
내심 조마조마 한 마음을 숨길수 없다..
단목령...檀木嶺 809m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이라고도 불린다.
옛적부터 박달령을 넘는 길은 현재 오색초등학교가 있는 박달마을에서 시작한다.
오색마을 사람들은 '박다룩'이라고도 하고, 학교가 있다 하여 '학교마을'이라고도 한다.
옛적에는 산 형국이 말 같기도 하고, 조선 초에 오색역을 거쳐 갈 때 이 곳에서
말을 갈아타고 갔다고 해서 '마산(馬山)'이라고 불렀다.
단목령 구간의 원시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사진을 남겨둔 이유는...
바로 이 이정표 밑에 알탕자리가 있다는것...ㅎㅎㅎ
산마루금을 다니는 우리는 마루금에서 계곡을 본다는것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노인봉 구간의 소황병산 밑자락에도 그러했듯이 다행이 마루금옆을 지난는 계곡이
있더이다..
이러한 삼복더위에 소리만 들어도 시원해 짐을...
잠깐 고생한 발들을 쉬게하고선...ㅎㅎㅎ
알탕이지..ㅎㅎ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지 아니한가??
나는 이길을 지나지 않았네..ㅎㅎㅎ
그저 사진일 뿐이네...ㅎㅎ
휴식공간의 팔각 데크...
여기까지만 오면 거의 한 구간을 종료하는 정점이다..
바로밑에 조침령의 표시석이 있으니...
때 아닌 소나기로 옷들은 온통 젖어 있고..
등산화 틈새로 젖어진 소나기의 흔적들...
땀인지 육수 인지모를 몸에서 뿜어진 수분의 쩔은 냄새와 오늘도 한구간을 무사히
마쳐간다는 자부심과 함꼐...
조침령
조침령은 원래 소금을 지고 오던 길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을 위해,
유신 당시에는 고관대작의 정원 조경수와 원석을 실어나르는 데 이용되었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떨어질 조阻', '가라앉을 침沈'자를 써서 험준하다는
뜻의 조침령(阻沈嶺)이라 하였으나, 산경표에는 조침령(曺枕嶺),
근래의 백두대간 종주자들은 '새도 자고 넘는다는 고개'라는 뜻으로
조침령(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계령이 1004m이고, 구룡령이 1013m인데,
그보다 훨씬 낮은 조침령을 새도 자고 넘는다고 한 것은 무슨 이유???
조침령도 구룡령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길이 본래의 옛길이 아니다.
본래의 옛길은 현재의 조침령보다 남서쪽에 위치한 쇠나드리 근처를 넘었다.
지금의 조침령은 20여 년 전 군부대가 놓은 새길...
이 표시석 또한 군부대가 만들어놓은것...
아마도 이곳 그시대의 군의 높으신 분이 산을 엄청 사랑하였던 것 같다....
조침령표시석에서 이번 하신길은 진동리로..
왜냐면 땀과 소나기로 범벅이된 육체의 찌든 냄새를 잠시나마 알탕으로...ㅎㅎ
조침령 터널 관리사무소 길건너편의 맑은 계곡.....ㅎㅎㅎ
자연이 주는 선물...
대간길에서 알탕을 두번이나 하다니...ㅎㅎ
축복이로세...축복이로세
오늘도 무사히 한구간을 마침을 산신과 자연에 감사드리고...
남한의 진부령 까지만 갈수 만 있다면....ㅎㅎㅎ
퍼옴......
한계령...寒溪嶺 1004m
과거에는 양양군에 해당하는 산을 설악산이라 하고 인제군에 해당하는
산을 한계산이라 했다.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양양군에서는 오색령.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했으며,
양양군 사람들이 설악산을 넘어서 인제군이나 서울로 갈 때 주로 이용되던
험한 산길이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산도둑이 들끓어,
해가 지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의 길목인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금표라고 새겨두었다.
지금도 그곳에 바위가 있으며, 한계령에 오르는 길에는 금표교가 있다.
- 다섯 빛깔 전설의 땅, 오색(五色)
한계령이라 부르니 그저 서운한 땅이 바로 남설악의 오색이다.
오색에서는 그저 모든 것이 다섯이다.
신통하게도 골물이 흐르는 골짜기 너럭바위에서 솟아나는 오색약수
역시 그 맛이 다섯이라 하고, 보물 제 497호 삼층석탑 이 남아 있는
성국사터의 다른 이름 또한 돌빛마저 다섯 빛깔을 낸다하여 오색 석사(五色石寺)다.
'다섯 전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다섯 빛깔의 꽃이 핀다는 오색화(五色花) 전설이다.
오색이란 마을 이름도 다섯 빛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생겨났다는 정설....
북암령..北岩嶺 925m
북암령을 지나왔지만 갑작스런 소나기에 사진 한장 못남기고 ..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고 서 있는 점봉산의 동쪽 산줄기에 해당하는
북암령은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한계령풀의 집단 분포지로 알려진 곳..
조침령이 도로공사로 옛길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 북쪽에 위치한 북암령과 박달령은
아직도 옛길 그대로이다. 북암령은 양양군 서면 북암리에서 서쪽 2km가량 지점에 있으며,
북암리는 미천골 선림원지에서 북쪽에 위치한 암자가 있었다 하여 북암리라 했다.
양양을 사투리로 '예양'이라 부르는 것처럼, '북애미'라고도 부른다.
-국내 최대 한계령풀 군락지
매자나무과의 이 식물은 국내에서는 그 이름과 달리 설악산 일부 지역과 점봉산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식물로,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지방에서도 있으나
그곳에서의 것들과 달리 이곳 한국에서의 서식지 영향으로 또 다른 개체종으로의
성격을 띄게 된 종이다.
제철에 잠깐 노란색 꽃을 피웠다가 이내 몸째로 녹아 없어져 뿌리로서만
동정이 가능한 한계령풀은 전세계에서 내노라는 초본식물원(herbatium)들도
그 표본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유명한 곳을 다녀왔단 말인가...
- 양양의 다섯 고개
양양과 백두대간 너머 지역을 잇는 고개 중 한계령과 구룡령 외의 고개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고개들이 조침령, 북암령, 단목령이다.
양양에 있는 이 다섯 개의 고개 모두가 양양군 서면에서 인제 혹은 홍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다.
서면뿐 아니라 양양군 현북면 또한 백두대간과 접해 있지만,
유독 서면에만 고개들이 나 있는 까닭은 대간 너머에 마을과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침령, 북암령, 단목령은 대간을 가운데에 두고 양양, 인제, 홍천에 살던
선질꾼, 마꾼과 같은 생선장수, 소금장수, 젓갈장수들이 양양장을 보거나,
수산물을 팔기 위해 왕래했던 고개이다.
선질꾼은 등에 바지게나 통지게를 지고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팔던 이들이고,
말을 가지고 물건을 실어 날랐던 이들은 마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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