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1708m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예로부터 설산(雪山)·설봉산(雪峰山)·설화산(雪華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고, 금강산(1,638m)을 서리뫼[霜嶽]라고 한 것과 관련해 우리말로 설뫼[雪嶽]라고도 하였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오대산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
백두대간의 한계령-공룡능선-미시령을 중심으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 속초지역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식생 분포도 다양해 온대 중부지방의 대표적인 원시림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대청봉에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눈잣나무와 눈주목은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방계 고산식물이다.
그 밖에 소나무·벚나무·개박달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눈측백·금강초롱꽃·금강분취 등 총 882종의 관다발식물이 분포하며 이 가운데 65종이 특산식물, 56종이 희귀식물이다.
동물은 사향노루·산양·곰·하늘다람쥐·여우·수달 등 희귀종을 포함하여 총 39종의 포유류와 62종의 조류 및 각종 파충류·양서류·어류·곤충 등이 서식한다. 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82년 8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보존지역·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 5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산
동국여지승람의 양양도호부편에 "설악은 부의 서북쪽 50리에 있는 진산이며 매우 높고 가파르다. 8월에 눈이 내리기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라고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 때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산이었다. 인제현편에는 오늘의 장수대 부근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수록되어 있다. "한계산. 현의 동쪽 50리에 있다. 산위에 성이 있다(한계고성을 말함). 냇물이 성안으로부터 흘러나와서 곧 폭포를 이루어 내려가니 흐름이 수백척의 높이에 달려있으므로 바라보면 흰무지개가 하늘에서 드리워진 것 같다.(대승폭을 말하는듯) 원통역으로부터 동쪽은 좌우쪽이 다 큰 산이어서(서북릉과 가리봉을 말함) 동부가 깊숙하고 산골물은 가로세로 흘러서 건너는 것이 무려 36번이나 된다(한계천과 자양천을 말함). 소나무와 잣나무가 모두 높아서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다. (오늘날에도 이런 나무들이 많이 남아있다). 또 그 남쪽에는 봉우리가 절벽을 이루었는데 그 높이가 천길이나 되어서 기괴하기가 형언할 수 없다(하늘벽을 말함)"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같이 금강산에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설악산이 우리의 레저문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말부터이다. 지금 설악산은 국내등산과 레저를 운위할 때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이며 연간 수백만명이 계곡과 능선, 암벽과 빙폭을 누비는 레저활동의 메카가 되었다. 레저를 알며 즐기는 연령층의 대부분은 일출이라면 대청봉, 빙폭이라면 토왕성, 암릉종주라면 공룡과 용아장성, 능선종주라면 미시령에서 한계령에 이르는 백두대간, 안산에서 대청에 이르는 서북능선을 떠올린다. 폭포와소라면 대승폭과 12선녀탕, 계곡산행이라면 내설악 구곡담, 가야동, 암벽산행이라면 천화대, 눈사태라면 설악을 떠올린다. 4계절 어느 때 찾아도 찾는 이에게 깔끔하면서도 장중한, 그러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한 설악산의 얼굴은 다양하기만 하다.
- 설악의 8기
* 천후지동(天侯地動) - 하절기면 비가 많이 내려 뇌성이 일어나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하늘이 온통 찢어지듯 울부짖고 땅이 갈라지듯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의 신비와 울림의 기이로움.
* 거암동석(巨岩動石) - 흔들바위와 같은 거암괴석이 움직이는 신기로움
* 백두구혈(百斗毆穴) - 북면 용대리 외가평에서 백담사로 가는 백담계곡에 하식작용에 의해 구휼을 형성하고 있어 학이 날아간 흔적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구휼의 기이함
* 전석동혈(轉石洞穴) - 외설악의 계조암은 대표적인 전석동혈로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있어 하나의 자연동굴을 이루고 있는 신비로움
* 수직절리(垂稙節理) - 암질과 구조의 차이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이루어져 내설악의 12선녀탕, 하늘벽과 같이 험준한 지형과 외설악의 천불동계곡등, 모두 신비롭고 다양한 절리에 천태만상의 형상
* 유다탕폭(有多湯瀑) - 12선녀탕과 같이 쏟아지는 물에 반석이 패여 큰 바위획이된 탕의 기이함
* 금강유혈(金剛有穴) - 비로봉의 금강굴과 큰석산에 구멍이 생긴 기이함
* 동계설경(冬季雪景) -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면 쌓이고 쌓여 11월부터 3월까지 백설이 만연하다.
- 설악의 8경
* 용비승천(龍飛昇天)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이며 최장인 대승폭포를 비롯하여 쌍폭, 소승폭포,비룡폭포, 토왕성폭포, 육담폭포, 오련폭포, 천당폭,독주폭포등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폭포로 물줄기가 낙하하고 무지개가 발생하니 마치 용이 승천하는것 같이 황홀하며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역승하는 듯한 선경이 장관이다.
* 설악무해(雪嶽霧海)
하절기이면 산봉우리마다 구름에 덮이고 안개에 쌓여 구름위에 솟아있는 대청봉의 풍경은 참으로 장관이며 또한 안개속에 잠겨있는 설악의 골짝은 무해로 변하니 산봉우리에 앉으면 구름의 흐름이 선경을 방불케해 그 조화는 8경중 제일이다.
* 칠색유홍(七色有紅)
겨울철에 쉬지 않고 낙하하는 폭포수에 햇살이 반사되어 비수에는 영롱한 무지개가 발생하고 또한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 홍해황엽(紅海黃葉)
만산에 단풍이 들고 나뭇가지마다 누런 잎에 쌓여 골짜기마다 금수강산이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선경이다.
* 춘만척촉(春滿擲蜀)
대청봉 남측에 발달한 진달래와 철쭉군락을 비롯하여 백화가 온 산을 덮어서 4월에서 7월이면꽃들이 만발하여 가득하니 상상 할 수 없는 진경이며 비길때 없는 풍경이고 행인의 눈을 어리게 한다.
* 월야선봉(月夜仙峰)
가을 밤하늘이 밝을때 둥근달이 중천에 뜨면 기암괴석의 모습이 난무하는 선녀같이 보이는 절경은 설악팔경에 빼놓을 수 없는 야경이다.
* 만산향훈(滿山香薰)
춘삼월부터 산천초목이 소생하면 그윽한 향기가 산에 충만하며 바람이 불면 향긋한 냄새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며 코를 찌르는데 특히 대청봉, 화채봉, 오색계곡에 발생하는 눈향나무 숲을 지나면 눈으로 보는 풍경도 좋고 여흥을 돋구어 준다.
* 개화설경(開花雪景)
겨울철이 오면 온산이 흰색으로 물드는데 나무나 기암절벽에 눈이 쌓이면 온갖 형태의 눈꽃이 피어 절경을 이룬다.
◆[소청봉] 1,633m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과 중청봉의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로 실제로는 봉우리가 아닌 중청봉이 끝나는 지점의 언덕이다. 속초시 설악동쪽에서 시작되는 천불동계곡 등산로와 인제군 용대리에서 시작되는 백담계곡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용아장성] 龍牙長城
봉정암 사리탑을 기점으로, 동으로는 가야동 계곡과 만경대, 공룡능선을 거느리고 서로는 수렴동, 구곡담 계곡을 끼고 서북 주릉이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내설악의 그 중심에 자리한 용아장성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암봉들이 용의 송곳니처럼 솟아 있다.
용아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용아장성은 험하고 날카로운 산세로 인해 숙련된 클라이머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절에 관계없이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항상 출입금지구역이다.
[희운각]喜雲閣
양폭산장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지점이자, 무너미고개 바로 위에 위치한다. 원래는 고작 30명이 묵을 수 있는 조그마한 대피소였으며 그후 신관을 지어 7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으므로 설악을 등반하는 애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옛 희운각 산장은 산악인 희운 김태묵 씨가 사재를 털어 지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국립공원에서 현대식 시설로 다시 지었다.
◆[무너미고개] 1060m
무너미고개는 ‘물 나눌 고개’의 우리말이라 한다. 물을 나누다, 물을 가르다.
물이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자분수령에 의해 청봉에서 같은 빗물로 태어났지만, 이들의운명은 정반대의 길을 간다. 용아장성을 감싸든 가야동 계곡과, 천불동 계곡을 나누는 무너미고개. 각자 서해와 동해로 흘러간다.
◆[공룡능선] 1708m
나한봉-큰새령-1275봉-범봉(천화대)-신선대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 불린다. 공룡릉은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리킨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옛 문헌을 보면 지금의 대청봉이 있는 양양, 속초의 산만을 `설악'이라 제한하였고 귀때기청봉이 있는 인제쪽의 산을 `한계산'이라 따로 지칭했다. 그 예로 안산 남쪽 장수대 부근에 있는 한계산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진부령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북주능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수많은 암봉들로 구성된 공룡능선인데 이 코스가 바로 북주능의 등뼈 역할을 하는 공룡능선을 가장 짧은 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길이다. 이 능선은 1963년 겨울, 당시 한국의 암벽등반 선구자이던 선우증옥, 정규현, 채태웅씨 등이 처음으로 완등한 이후 산악인들로부터 각광을 받다가 최근엔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등산로가 잘 닦여있다.
공룡능선(恐龍稜線).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장쾌한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삼거리까지 약 8㎞에 이르는 암릉길로 오른쪽 동쪽으로 외설악, 서쪽으로 내설악을 구분짓는 설악의 대표적 능선이다.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나한봉]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첫 봉우리다. 정상부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암릉을 이룬다. 등산로는 누운 향나무의 뿌리들로 빼곡하다. 나한봉 정상에 서면 1275봉과 천화대가 바로 앞에 펼쳐지며 멀리 대청봉과 서북릉이 검푸른 모습으로 하늘과 경계선을 긋는다. 서북릉 앞으로 한줄기 험악한 산자락이 길게 늘어지는데 이것이 용아장성릉이다. 안개에 잠긴 내설악 백담계곡이 거대한 호수가 되어 숨죽이며 출렁인다. 외설악 화채능선의 끄트머리에 암봉군으로 형성된 집선봉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다. ‘나한’은 불교용어로 ‘오백나한(五百羅漢)’의 준말이다. 나한봉은 뽀쪽뽀쪽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은 수많은 (약 500개로 헤아려짐) 봉우리가 좁게는 서쪽 아래에 세워진 오세암을, 넓게는 마귀로부터 사바세계를 지켜준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금강굴]
미륵봉 금강굴은 자연동굴로 1300여년 전, 원효대사가 수행기도하셨던 곳으로 민중교화승인 원효대사의 대표적인 금강삼매경론의 머리를 따라 금강굴이라 한다. 설악8기중의 하나인 이 곳 금강굴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외설악 비경으로 공룡능선과 천화대능선 및 화채능선 사이로 계곡이 펼쳐 보이며, 계곡 양쪽으로 솟은 봉우리들은 각기 모습이 다른 천 분의 부처님 형상을 새겨놓은 듯하여 천불동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 설악의 산악미를 한데 모은 듯한 경승지인 토막골, 만경대, 죽음의 계곡, 칠형제봉, 형제폭포, 유선대, 소청봉, 중천봉, 대청봉이 한눈에 보이며 봉우리 곳곳에 부처님 형상이 펼쳐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예로부터 금강굴에서 부처님께 일념으로 기도드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각지각처에서 많은 불자들이 다녀가는 성지다.
마고선녀(麻姑仙女)가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는 비선대 앞에 있는 장군봉(혹은 미륵봉) 중턱 해발 600m 지점의 암벽 한 가운데 있다. 경사가 급해서 굴까지는 곳곳에 설치된 부교와 콘크리트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굴의 크기는 7평쯤 되며, 굴 속의 토기 등 생활용구와 석불좌상으로 보아 고승이 도를 닦던 곳으로 짐작된다. 굴까지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설악 8기중의 하나다.
- 금강굴 유래
1. 원효대사가 금강굴에서 수도를 했는데 금강경을 만들었다. 금강경 원문 속에 금강이란 말이 있기 때문에 이 굴을 금강굴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금강경을 알기 쉽게 금강소를 지었을 뿐이다.
2. 이와 달리 금강(金剛)이란 것을 불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금강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진짜 완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제석천(帝釋天, 관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기 응신술을 갖는데, 동자 대장의 모습 등 서른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이라는 부처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금강이라 한다. 결국은 관음보살이다. 지팡이는 모든 사악한 잡귀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일종의 무기다. 금강굴은 높고 아주 험한 곳에 있어 다른 것들이 접근하기 어려우니, 누가 범접할 수 없는 곳, 진수 중에 진수. 그래서 이곳에서 도를 닦으면 도통할 수 있다 하여 금강이라 한다는 설이 있다.
◆[황철봉] 1381m
설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북쪽 봉우리라고 해서 미시령과 함께 ‘북설악’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천연보호구역 지정비가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설악의 조망은 가히 절경이라는 말로 표현할 만하다. 공룡능선과 집선봉, 화채봉이 건너편 풍경으로 다가오고, 멀리 대청봉과 중청봉, 용아장성릉, 서북능선의 위용과 내설악의 첩첩산릉도 한눈에 들어온다. 황철봉의 남쪽 사면은 바위를 드러낸 거대한 단애(斷崖) 벼랑이다. 중간의 수많은 바위들은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하계를 내려다 본다. 쓰러지고 넘어진 바위는 산산조각 나서 폭포수 같은 너덜을 만들어놓았다. 황철봉이라는 이름은 바위의 색에 따라 붙여진 듯하다. 바위마다 푸른 회색의 이끼 옷을 입고 있는데 예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색은 누렇지 않다.
[너덜지대(암괴원)]
암괴원은 기반암에서 분리된 각이 진 큰 바위 덩어리들이 완만한 사면에 넓게 나타나는 지형으로 보통 너덜지대라고 부른다. 주로 고위도 지방이나 교목한계선 위의 고산에 나타난다. 암괴원은 신생대 제4기 빙하시대에 빙하 주변의 한랭한 주 빙하 기후 지역에서 기반암이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암석이 갈라지고 부셔져 생긴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닌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암괴원은 설악산국립공원의 황철봉(1381m) 일대이며, 월악산국립공원의 대미산 능선에 작은 규모가 분포하고 있다. 암괴원은 과거 산지에서 있었던 기후 변화와 자연 환경 변천사를 알려주는 지형 경관이다.
[울산바위안부]
외설악 신흥사 앞에서 서북계곡으로 따라 올라가 내원암을 지나 산마루에 올라서면 엄청난 바위산이 가로막고 있다. 이 산이 바로 울산 바위다. 한 덩어리 바위로는 동양에서 가장 크다. 높이 950m이고 사방이 절벽으로 이뤄져 있으나, 808계단의 쇠다리가 가설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아찔한 철계단은 이제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2012년 11월 국립공원에서 우회 등산로를 설치하였다.
- 울산바위 전설
1. 울산(鬱山)바위의 울(鬱)은 울타리를 뜻하는 말로 울산(蔚山)의 울(蔚)자와는 완전히 글자가 다르다.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울산에서 왔기에 울산바위라는 말이 붙은 것이다. 울산바위는 울타리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울산바위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현실성 있다.
2. 조물주가 강원도 땅에 천하의 이름난 산 하나를 만들되 산봉우리의 수를 꼭 1만2천으로 할 계획을 세우고, 각 지방의 산봉 중에서 웅대하기로나 남의 눈을 끌만한 산에 명령을 내려 모월 모일 모시를 기한으로 금강산 쪽으로 오면 심사하여 합격한 산에 대하여는 용모에 알맞은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했다. 이에 전국 각처의 수많은 산들이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모두 모여들었다.
이때 경상도 울산(蔚山) 땅에 둘레가 10리나 되며 웅장한 바위인 ‘울산바위’도 금강산으로 떠나왔다. 그러나 태백산령을 걸어오는데 워낙 몸집이 육중해 빨리 걸을 수 없어 온 힘을 다해 걸었으나 설악산, 지금의 울산바위 있는 근처까지 와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쉰 뒤에 다음날 다시 육중한 몸을 끌며, 금강산에 가서 조물주를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 울산바위가 금강산 어귀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1만2천봉이 다 정해졌기에 자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주위의 웃음거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 바위는 어젯밤 쉬던 곳을 생각했다. 어차피 금강산에서 단역을 하느니, 외설악에서 주역 노릇을 하자는 생각으로 울산바위는 현재 외설악 중턱에 자리 잡았다.
3. 동자승의 재치가 빛나는 울산바위 전설이다. 울산바위가 울산에서 왔다는 전설을 들은 조선왕조 때 한 울산부사가 설악산에 탐승을 왔다. 이곳에서 울산바위의 전설을 듣고 승려들을 골탕 먹여 치부(致富)해 볼 꾀를 냈다. 부사는 신흥사에 들러 주지를 불러 ‘너는 어찌하여 내 고을에 있던 울산바위가 너의 사찰에 와 있는데도 지세(地稅)를 이제까지 물지 않느냐? 몇 해를 기다려도 지세를 가지고 오는 낌새가 없기에 오늘은 직접 지세를 받으러 왔다’고 호통을 쳤다. 이에 유생들 횡포에 기가 죽어 있던 신흥사 주지는 그해부터 울산부사에게 울산바위의 지세를 물기로 그 자리에서 승낙하고 말았다. 그해부터 막대한 지세를 물다보니 신흥사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다. 주지승의 근심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승의 근심을 곁에서 지켜본 동자승이 ‘앞으로 울산에서 울산바위 지세를 받으러 오거든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해결 하겠습니다’라고 자신했다. 얼마 뒤 울산에서 사람이 오자 동자승은 ‘지금까지 억울한 지세를 물어왔으나 이미 문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금년부터는 물어줄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동자승은 ‘울산바위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우리에게는 큰 손해일 뿐이니 울산바위를 도로 울산으로 옮겨가든지 하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온 사람도 도리가 궁해 ‘네 말대로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겠는데, 타고 남은 재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묶어주면 바위를 옮기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동자승은 마을사람들과 절간 승려들을 동원해 며칠동안 새끼를 꼬게 해 울산바위를 칭칭 감았다. 그리고 광솔에 불을 붙여 새끼를 다 태워버리니 울산바위는 재로 된 새끼로 얽혀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울산사람에게 약속대로 했으니 바위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자 울산사람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미시령] 彌矢嶺 826m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 경계에 있는 고개. 예로부터 진부령·대관령·한계령 등과 함께 태백산령을 넘는 주요 교통로였다. 현재 미시령은 태백산령 북부의 횡단로로 설악산 북부를 넘어 인제∼속초를 연결한다. 도로는 6·25전쟁 당시 개설된 진부령에 이어 1960년대에 개통하였으며, 인제∼속초의 거리를 많이 단축시켰다. 도로 연변에는 영서 쪽으로 백담사(百潭寺)·십이옥녀탕(十二玉女湯)·도적소(盜賊沼), 영동 쪽에 선인재[仙人峙]·신선바위[神仙岩]·혜바위[?岩]·화암사(禾岩寺)·울산바위[鬱山岩] 등의 명소가 있다. 1970년 3월 설악산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광도로의 통로로서 더욱 중요시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이 고개를 미시파령(彌時坡嶺)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형이 험하나 계곡과 산세가 수려하며, 서쪽 사면에서는 북한강의 지류인 북천이 발원한다. 이 하천을 따라 나 있는 인제-속초 간 도로는 주요관광도로이다. 일대에 있는 울산바위·흔들바위·십이탕곡·신선대·내원암·신흥사·백담사 등과 함께 설악산국립공원을 이룬다.
◆[상봉] 1241m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다. 옆에 있는 신선봉과 비교되는 말이다. 이름대로 높이나 모양새, 조망이 뛰어난 상급의 봉우리다. 이곳에서는 설악산군의 여러 능선과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 멀리로 향로봉능선이 펼쳐진다. 동쪽으로 바다와 연하여 속초 시가지가 그림처럼 들어와 박힌다. 동쪽계곡 아래 넓은 들판에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던 ‘강원 청소년수련장’이 있다.
북설악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북녘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는 잘 쌓은 돌탑이 있는 곳이다. 주변은 돌을 쌓아 만든 군 참호들이 있다.
◆[화암재] 1050m
고성군 신평리와 소간령으로 넘나드는 고개. 속초 영랑호 주변과, 동해안 일대가 환히 잘 조망된다. 신선봉과 상봉을 연결하는 산허리 지점이다. 이 구간은 대부분 암릉으로 대간답사의 재미를 더하게 한다. 적설기에는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노루목의 이름도 ‘화려한 모습의(華) 바위들(岩)로 가득한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화암(華巖)’으로 표기한 지도도 있다. 동쪽계곡 아래에 이 고개의 이름을 본뜬 사찰 ‘화암사’가 있지만 등산로가 분명치 않아 바로 내려서기는 곤란하다. 화암재에서 서쪽의 계곡을 따라 1시간 30분쯤 내려가면 심산유곡인 마장터에 닿게 된다.
◆[신선봉] 1204m
대간령과 상봉 사이에 위치한 봉우리로 정상 부분은 크고 험한 바위지대다. 특히 북쪽 사면은 수십 미터의 절벽으로 너덜이 폭포수처럼 내려져 있다. 해발 1204m이며, 정상에 천연보호구역 지정비가 있고, 옆에 너른 공터도 있다. 정상에서 돌아보는 조망이 경쾌한 곳이다. 신선봉 자체를 관찰하기에는 5분 거리에 있는 큰 바위가 제격이다. 신선이 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봉우리 자체가 신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상 직전에 화암재로 바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우므로 챙겨서 올라보는 것이 좋다.
흔히 금강산을 ‘1만2000봉’이라고 하는데 그 중 5개 봉우리는 휴전선 남쪽에 있다. 5개 가운데 향로봉이 가장 북쪽에 있고 그 밑으로 삼봉, 둥글봉, 칠절봉, 신선봉이 있다. 만일 금강산보다 설악산에서 더 가까운 신선봉까지 금강산에 포함시킨다면, 금강산과 설악산의 경계지점은 미시령까지 후퇴할 수 있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흔히 향로봉까지를 설악산의 범위로 본다. 신선봉은 전망대로 불릴 만큼 설악의 봉우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대청 중청 소청은 물론이고 희운각산장과 죽음의 계곡도 보인다.
◆[대간령] 큰새이령 660m
지금은 남교, 가평, 용대를 한데 모아 그저 용대리로 부르지만 본래의 용대는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에 놓인 마을이다. 용대에서 오른쪽이면 미시령이요, 왼쪽이면 진부령이다. 금강산에서 무산과 마기라산 (麻耆羅山)으로 달려온 백두대간이 진부령과 미시령을 건너면 바투 설악산이다.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는 지금은 풀숲에 가려 등산꾼들도 여간해서 잘 다니지 않는 옛길 대간령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양강 상류 미륵천의 근원 가운데 하나로 운운하는 ‘소파령의 물길’이란 바로 대간령의 물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파령은 택당 이식의 『수성지』에 “석파령이라고도 하고, 한때 사자원(獅子院)이 있었기에 원기령이라고도 한다” 했고, 그 밖의 옛글에도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개인데 무슨 까닭인지 오늘날은 대간령이란 낯선 이름으로 통한다. 소간령은 진부령 아래서 대간령을 향해 골짜기를 거스르다 만나는 고개인데 그 역시 대간령과 함께 새로 생긴 이름이다.
- 소간령과 마장터
대간령 서쪽으로 내려가면 평원인 듯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옛 집터자리들이 있다. 문헌에 동으로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요, 서쪽으로 인제군 북면 마장터, 소간령이며 용대리로 간다. 고성과 인제의 경계다. 마장터 부근에는 주막이 있었다 한다. 상봉에서 서쪽으로 뻗으며 46번국도 용대리 자연 휴양림 있는 곳까지 뻗은 산줄기가로 대간령에서 창암으로 넘나드는 고개가 소간령이다.
◆[병풍바위]
병풍 모양의 바위. 향로봉등이 조망 된다.
◆[마산봉] 1052m
흘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 말 등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마산봉이라 한다. 금강산의 끝 줄기이다. 겨울이면 눈질(스키 타는데) 좋은 눈이4-5m씩 쌓이며, 또 다른 연고로 1958년 육군 산악스키부대 훈련장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스키장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75 - 1979까지 5회에 걸 전국체전동계스키대회 각종 경기가 열렸으며 1992년에는 제2회 아세아 주니어 알파인 대회도 개최, 이 스키장은 천혜의 산세로 바다와 금강산도 관조할 수 있다. 지금은 알프스리조트가 계속 발전 시켜나가고 있다.
흘리 마을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의 수복지 입니다. 전쟁 이후 한 동안은 통제구역으로 묶어 지역 주민들 조차 통행이 제한 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고장 주민들과 실향민들이 이 곳에 정착 하며, 산을 갈아 밭으로 만들어 가며 마을을 일구 었다고 합니다. 지역 자체가 추운 지역이라 5월까지 눈이 내리는 일도 허다했으며, 초기에는 흉년과 추위에 많은 고생을 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흘리의 모습은 예전의 그런 아픔의 흔적이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일치 단결되어진 힘과 새 농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 2000년 환경우수마을, 2001년 새 농촌 건설운동 등의 활동과 아울러 현재는 지역 내에서도 인정 받고 잘 사는 마을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진부령] 陳富嶺 529m
강원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간성읍을 잇는 고개. 소양강(昭陽江)의 지류인 북천(北川)과 간성읍으로 흐르는 같은 이름의 소하천, 즉 북천의 분수계가 되어 있다. 간성~한계리 국도가 지나는 이 고개는 태백의 여러 고개 중에서는 높이가 가장 낮다. 그러나 잿마루에 올라 서면 동해와 태백산지 사면의 수해(樹海)가 눈 아래에 펼쳐지고, 구곡양장의 고갯길이 장장 16km에 걸쳐 이어진다. 인제쪽에 원통리, 간성쪽에 진부리가 있어 각각 영하취락(嶺下聚落)을 이룬다
『수성지』에 보면, 간성에서 영서로 통하는 고갯길이 매우 좁고 험하여 인조 10년(1632)에 관에서 역승(役僧)을 모집하여 처음 개설했다고 한다. 1632년은 『수성지』의 저자 택당 이식이 간성현감으로 재직할 무렵이다. 당시의 노동의 주체가 역승이라 했으니 이는 진부령 아래의 큰절 건봉사 승려들이 대부분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후 1930년 차량이 통행하게끔 보수하였고, 1981년 지방도에서 46번 국도로 승격 87년~89년 확장공사 후 오늘에 이르며 표시석과 향로봉전적비는 확포장 공사 당시 지금 이곳에 이전 설치하였고 2005년 대형표시석이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
한계령, 미시령과 더불어 설악의 준령으로 손꼽히지만 진부령길은 여느 고개와는 견줄 바 없이 녹록하고 수더분하다. 높지 않으니 가파르지 않고, 가파르지 않으니 험하지 않다. 길도 슬슬 몇 구비 돌다 보면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고, 고갯마루에는 버스가 서는 차부가 있는가 하면 이런 저런 가게들이 마을을 이루어 백두 대간의 고갯마루로는 통 믿기질 않는다. 고갯마루가 이미 마을을 이루었으니 예로부터 부르기를 ‘조쟁이’라 하였다. 지난 날,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곡물이 마주 올라와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선다’는 내력으로 얻은 이름이다.
요즘 부르는 이름으로 조쟁이는 흘3리다. 현주소는 고성군 간성읍을 따른다. 본래 금강산 아래 아름다운 바닷가 고을이던 고성과 간성이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었다. 고성은 북녘 땅이 되고 간성은 남녘 땅이 되고. 남녘 땅에 붙여진 고성군의 명칭은 다만 창졸한 사이에 코앞의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향수를 다독이는 이름이다.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하늘 아래 첫 동네 흘리는 비록 간성읍을 따르지만 워낙 외진 곳이라 따로 흘리출장소를 두었다. 간성이래도 흘리는 품 밖의 간성이다.
- 진부령유별시비
1633년 1월 이식 선생이 한양으로 승차되어 가는 길에 선생을 배웅하기 위해 눈 덮인 진부령 고갯마루까지 배를 주리며 따라온 군민들의 인정에 대하여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남긴 시라고 한다.
[칠섭로와 향로로]
원래, 현 위치에서부터 칠절봉(1172m)의 구간을 '칠절로'로 불러왔는데 2004년 11월 새벽 짙은 안개속에서 고압선에 감전된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을지부대 향로봉대대 고 김칠섭 중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투철한 군인정신을 본받기 위해 구 '칠절로' 구간을 고 김칠섭 중령이 산화한 지점까지 '칠섭로'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칠섭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향로봉까지는 향로로다.
◆[칠절봉] 1172m
진부령에서 서쪽으로 높이 솟은 봉우리다. 향로봉과는 직선거리로 7.5Km 떨어져 있다. ‘일곱 마디 봉’ 혹은 ‘일곱 번 꺾인(곳에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이곳이 옛날 금강산의 일부였으므로 비로봉에서 크게 일곱 번 꺾인 곳으로 본 듯하다. 행로봉과 함께 우리 군대가 주둔해 있다.
칠절봉은 ‘일곱 매디봉’이라고도 부른다. 굴곡이 심한 산자락이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기는 하지만, 봉우리 자체가 일곱 마디로 꺾인 것이 아니라, 어느 봉우리 혹은 어느 고개로부터 일곱 번째로 꺾이는 능선상에 솟은 봉우리라는 뜻인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금강산이 아닐까?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에서 다섯 개의 봉우리가 남한 땅에 있는데, 향로봉, 둥글봉, 칠절봉, 삼봉, 신선봉이 그것이다. 칠절봉에서 금강산 비로봉까지는 100㎞도 안되고, 지도를 이어놓고 꺾어지는 지점을 헤아려보니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칠절봉에서 향로봉 분기점까지는 계속 방향이 북진한다. 분수령마루금을 중심으로 왼쪽은 인제군, 오른쪽은 고성군이다.
◆[둥글봉]
둥글봉 아래 초소를 기점으로 관할부대가 다르고, 보안상 단체별로 집결, 인원파악 후 향로봉으로 이동할 수 있다. 빨리 도착했다고 먼저 갈 수 없다. 이곳에서 향로봉까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칠절봉을 지나 1166.2봉은 무명봉으로 삼각점이 있다. 이 봉우리를 지나 1240봉에서는 능선이 왼쪽으로 틀어져 1245봉 무명봉에 이르다가 다시 오른쪽인 북쪽으로 꺾여서 1312봉에 닿게 된다. 이 1312봉을 흔히들 둥글봉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진짜 둥글봉은 1312봉에서 오른쪽인 동쪽으로 1㎞쯤 뻗어나간 능선상에 솟아 있는 독립된 봉우리다. 둥글봉은 1150m로서 모습이 둥그스름해서 두리봉 또는 원봉으로도 부른다. 국립지리원 지형도의 ‘둥굴봉’은 잘못 표기된 것이다.
둥글봉 분기점에서 향로봉 분기점까지는 능선이 뚜렷하게 나 있다. 1310봉에서는 산머리곡산(1023.9m)쪽으로 빠지는 능선을 타지 않도록 한다. 1270봉의 향로봉 분기점에서는 동북 방향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다. 이곳에서 600m쯤 가면 향로봉(香爐峰,1296.3m) 정상이다.
◆[향로봉] 香爐峰 1296.3m
강원 인제군·고성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고 험준한 산머리에 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구름이 걸쳐 있어 향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신라시대에는 가리라봉(迦里羅峰),조선시대에는 마기라산(磨耆羅山)으로도 불리었다.
6 ·25전쟁 중 격전지의 하나로 수복지구이며 산의 북쪽 사면에 휴전선이 지난다.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으며, 민통선에 인접하여 희귀생물대가 형성되어 있다.
해발 500m부터 서어나무군락, 700m부터 사스래나무와 함박꽃나무 군락, 정상은 미역줄나무와 다래덩굴 등이 자생하고 있다.
진부령에서 향로봉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사작전도로를 따라 향로봉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 코스이기 때문에 지루하고 산행의 묘미는 전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향로봉 정상에 서면 북녁 산하와, 남쪽의 설악산, 서쪽으로는 한북정맥과 대암산, 동쪽으로는 간성의 들판과 동해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향로봉의 유래 : 향로봉은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 중 하나이며 인제, 고성, 간성의 3군 경계지역에 위치한 1293m의 높은 고지로서 구름이 덮인 날이면 향로에 향불을 피워놓은 형상으로 보인다하여 향로봉이라 불린다. 맑게 개인 날에는 금강산 비로봉과 고성 절벽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이고 동해 해금강의 만경창파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산이다. (향로봉 유래 안내판)
- 마기라산
대동여지도나 여지도에서는 백두대간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마기라산이 지금의 향로봉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산경표상에는 금강산에서 회전령(檜田嶺), 진부령(珍富嶺)을 거쳐 순서가 바껴 마기라산으로 이어간다. 여기서 의문은 왜 마기라산이 진부령보다 뒤에 나오는지와 약간 비껴나 있는 마기라산을 백두대간에 넣었는 가이다.오류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고성재]
향로봉을 지나 계속 북진하면 건봉산에 이른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향로봉 정상을 거치지 않는다. 백두대간은 향로봉을 거치지 않고 왼쪽인 서북쪽으로 꺾어져서 고성재로 내려서는 능선을 타야 한다. 인제군 서화면의 매봉산에서 칠절봉~향로봉~건봉산을 잇는 능선을 향로봉산맥이라 하지만 우리 고유의 산경 개념에서는 한참 비켜 앉은 이름일 뿐이다.
향로봉 분기점에서 고성재(740m) 쪽으로 내려설 때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진행을 해야 한다. 특히 200m쯤 내려간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지능선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70봉에서 고성재까지는 오른쪽인 북쪽은 가파르고 왼쪽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특히 고성재 전의 950봉은 펑퍼짐해서 능선을 가늠하기 어려우므로 남쪽으로 잘못 내려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고성재 표고는 750m, 고성재에서 1052.8봉까지는 고성재 옆의 850봉을 올라섰다 내려설 때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삼재령]
진부령 이후 백두대간은 칠절봉 둥글봉 향로봉 고성재에 이어 남한 구역의 끝인 삼재령으로 이어진다. 삼칠령이라고도 부른다. 진부령에서 삼재령까지 도상거리는 26㎞ 남짓, 남한 쪽 백두대간인 지리산 천왕봉으로부터는 도상 662㎞, 실제 900㎞가량 떨어져 있다. 삼재령은 인제와 고성이 걸쳐있는데 고개로 동쪽으로는 외금강, 북쪽으로는 내금강으로 통한다.
삼재령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태봉의 궁예가 과거 북원의 양길을 떠나 강릉으로 갔다가 개성으로 향한 대장정중 삼재령을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전문가들은 태백 고개 중 가장 낮은 해발 450m가량의 삼재령을 거쳐 철원으로 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재령을 넘어 인제를 거쳐 양구와 화천 등을 지나 철원에 도착했다면 궁예의 흔적이 DMZ 대부분의 지역을 거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향로봉·건봉산천연보호구역
강원도 고성군(高城郡)과 인제군(麟蹄郡)에 걸쳐 있는 향로봉·건봉산·칠절봉(七節峰) 일대의 천연보호구역. 면적 8330만 6160㎡. 편마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있어 산세가 장년기적 양상을 띠며, 식물구계(植物區系)는 북부 온대림 특성을 보인다. 해발고도 600m 이상 고지대에 발달한 낙엽활엽수 교목림은 원시림에 가까우며 주목-신갈나무나 주목-자작나무와 전나무-신갈나무가 주군집을 이루고 참나무속 군집과 단풍나무군집이 우세하다. 활엽수림 그늘에 많은 종류의 버섯이 생육하고, 조수류와 곤충이 풍부하다. 특히 건봉산 동남부 계곡에는 해양성기후 의 영향으로 매우 양호한 수목과 초본이 보존되어 있으며 한국 특산의 금강초롱·갈잎용담이 대군집을 이루며, 체꽃·꽃쥐손이·산오이풀·산부추·노랑제비꽃·구절초 등의 고산식물군집도 발달하였다. 이 지역은 식물분포상 금강산(金剛山)과 설악산(雪岳山)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이며 태백산맥 동쪽의 식생 특성을 지녀 학술적 연구자원으로서의 가치와 다양한 생물보존 측면에서 높이 평가된다. 천연기념물 제247호.
녹슨 철조망은 북녘 땅 대간 가고픈 발길 잡네
진부령∼향로봉∼군사분계선(삼재령) 간 26㎞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금강산을 지나 설악 태백 소백 속리 덕유 등 나라의 명산을 거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도상으로 총 1,625㎞에 이른다. 도상거리를 삼등분해서 그중 1/3을 더하는 방식으로 산정한 실제거리는 대략 2,166㎞이다. 이를 우리의 이수(里數)로 환산하면 5,416리나 되는 긴 산길이다.
이 중 남한 쪽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을 지나 군사통제지역인 칠절봉, 둥글봉, 향로봉, 고성재를 거쳐 군사분계선 지점의 삼재령까지 총 702㎞정도의 거리다. 북한쪽 대간은 삼재령에서 금강산을 지나 장군봉까지 923㎞에 달한다. 남한쪽보다 221㎞ 정도 더 길다.
삼재령을 거친 백두대간은 무산(1,320m), 금강산 비로봉(1,638.2m), 온정령, 철령(685m), 풍류산, 두류산(1,323m), 재령산, 용풍산, 마유령, 노란봉, 마대산, 금패령, 동점령산(1,925m), 대각산(2,121m), 백사봉(2,098m), 북포대산(2,289m), 소백산(2,173m), 대연지봉(2,359m)을 지나 2,750m의 백두산 장군봉으로 이어져 천지에 닿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땅의 대간꾼들은 진부령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한다. 진부령 이후 삼재령까지 26㎞구간은 군사통제지역이고 휴전선 이북은 북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진부령까지 남한쪽 백두대간을 종주한데 이어 이번 산행에서는 진부령 이후 향로봉과 남방 한계선을 지나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삼재령까지 26㎞ 거리를 향로봉군으로 설정, 군 당국의 사전 입산 허가를 받아 이 구간을 부분적으로 답사했다.
향로봉군은 진부령∼칠절봉∼둥글봉∼향로봉∼고성재∼삼재령까지 26㎞. 삼재령까지가 남한구역이다. 백두대간이 동강난 삼재령(三峙嶺)은 현재 비무장지대 안의 군사분계선이다. 이 지점을 중심으로 해 남북으로 2㎞ 떨어진 지점이 남방·북방 한계선으로 설정돼 분단의 흔적인 철조망이 대간에 걸쳐져 있다.
진부령 이후 구간은 군사지역이어서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대간꾼들은 산경표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고 올바르게 알기 위해 군 당국으로부터 진부령∼향로봉 구간의 입산허가를 받아 9월 12일 경남지역의 극성스런 대간꾼인 최점석, 박주환, 이수호, 김종대, 조만종, 박명환, 그리고 대관령에서 만난 인연으로 '아빠와 아들이 함께하는 백두대간'의 주인공인 이남기·종인 부자 등과 함께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재 이 구간은 마루금을 따라 산행은 불가능하고 진부령에서부터 향로봉까지 이어진 군사도로를 따라 도보 또는 자동차편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향로봉군의 들머리인 진부령은 인제와 고성군 간성을 잇는 고개로 표고 520m. 진부령은 81년 국도로 승격돼 포장되기 전만 해도 강원도의 험준한 고개로 명성이 높다.
대간의 동쪽에 있는 고성은 반으로 쪼개진 국토의 끝자락이다. 금강산을 본디 제 땅에 두고 있었는데도 이제는 먼발치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비운의 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구려 땅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 땅으로 편입됐고 고려시대 들어 간성현과 고성현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조선에 이르러 각각 군으로 승격됐다. 1914년 고성군이 간성군에 통합됐다가 1919년 간성군이 고성군으로 개칭됐다.
그후 한국전쟁으로 금강산을 포함한 일부 간성 지역이 북녘 땅이 되어 편의상 남 고성, 북 고성이라 나누어 불리는데, 군청 소재지였던 고성읍은 북쪽에 있고 남한의 고성 군청은 간성읍에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은 진부령 표지석과 향로봉 전적비가 있는 광장 왼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고도가 한껏 높아지면서 1,090m봉을 지나 칠절봉에 닿는다. 마루금은 해발 1,172.2m의 칠절봉(七節峰)에서 방향을 90도로 꺾어 북쪽으로 향한다. 일곱 마디 봉으로 풀이되는 칠절봉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남한쪽에 있는 다섯 봉우리 중 하나다. 그 다섯 봉우리는 향로봉, 둥글봉, 칠절봉, 삼봉, 신선봉이다.
칠절봉에서 남쪽으로는 매봉산(1,271m) 줄기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둥글봉과 향로봉을 거쳐서 건봉산으로 이어진다. 철절봉에서 둥글봉(1,312m)까지는 완만한 산세를 하고 있어 별다른 기복 없이 이어진다. 마루금은 둥글봉에서 1,310m봉을 거쳐 1,270m봉으로 연결된다. 1,270m봉은 향로봉의 한 봉우리로 1,296.3m의 향로봉 정상에서 600m정도 못 미친 곳이다. 여기서 백두대간 마루금은 향로봉 정상을 거치지 않고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성재로 이어진다.
정확한 마루금을 밟을 수는 없었으나 진부령에서 지프차를 타고 군사도로를 따라 향로봉(香爐峰) 정상까지 올랐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까스로 향로봉 정상에 올랐으나 사방은 짙은 운무 뿐. 꿈에도 그리던 금강과 북녘의 백두대간은 보이질 않는다. 안내를 맡은 장교로부터 도상으로나마 철조망이 걸쳐진 대간이 어디쯤 있는지, 그리고 금강산과 북녘의 대간 마루금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향로봉에서 고성재로 이어져 철조망을 지나 무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줄기를 운무 속에 가늠해 보면서 벅찬 가슴 달랬다.
"아 ! 향로봉 남강은 옛 산 옛 물이로되 눈보라 내리치던 처참한 싸움터에 쓰러진 전우들의 모습은 간 곳이 없도다" 란 글귀가 새겨진 향로봉 정상 표지석과‘국토종주삼천리 5차연도 종착점’이라 새겨진 표목을 부여안고 잠시 눈을 감아본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백두대간. 그 대간 길을 따라 우리는 이곳까지 왔으나 더 이상 갈 수 없고 오직 그날,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으니 애달프고 슬프다.
행여 운무가 걷히길 학수고대하며 향로봉 정상을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소원해 봤으나 철조망이 걸쳐진 대간의 흉물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백두대간은 남녘의 대간꾼들이 되돌아설 때까지 운무를 붙잡고 보내지 않았다.
향로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능선은 대찰 건봉사가 있는 건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다. 건봉산 자락의 건봉사는 한때 설악산의 신흥사,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정도의 대찰이었다고 전해진다. 진부령에서 칠절봉, 둥글봉을 따라 북진하던 대간 마루금은 향로봉 정상 600m 못미친 1,270m봉에서 방향을 서북쪽으로 바꾸어 고성재로 이어진다. 대간은 1,270m봉에서 고도를 낮추어 고성재로 이어졌다가 다시 방향을 몇차례 바꾸어 비운의 땅, 비무장지대로 이어진다.
삼재령 2㎞ 못미친 지점에 분단의 상징인 남방한계선 철조망이 버티고 서 있다. 백두대간 남한쪽 종착점 삼재령. 이곳 삼재령에는 인제군 서화면과 고성군 신탄리를 잇는 도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군사분계선이라는 비극의 선만이 그어져 있을 따름이다. 향로봉 정상에서 운무 속의 대간을 상상으로 답사하고 아쉬운 마음 쓸어 담고 다시 진부령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향로봉군 답사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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