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일반)

지리 주능선 종주(1/2)

해 악(海 嶽) 2016. 9. 14. 16:45

지리 주능선 종주(지리산 1/2).....160911

교통 : 제이캠프

코스 : 성삼재1090~종석대~노고단1507~삼도봉1499~뱀사골대피소~토끼봉~

        명선봉1586~ 연하천대피소~형제봉1433~벽소령대피소~덕평봉.샘.~

        칠선봉~영신봉1652~세석대피소.샘~촛대봉1704~장터목대피소.샘~

        제석봉1806~천왕봉1915~중산리주차장 :약 35 km


지리산.... 천왕봉(1,915m)

신라 5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리산(智異山)을 글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 이라 한다.

이 때문인지 지리산은 여느 산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하여 왔으며

지리산 골짜기에 꼭꼭 숨어든 은자는 그 수를 추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蓬萊山), 지리산은 방장산(方丈山),

한라산을 영주산(瀛洲山)이라 하는데 소위 삼신산(三神山)이다."라고 하였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 능선의 거리가 25.5km로 60여리가 되고,

둘레는 320여 km로 800리쯤 된다.


내생에 주능선 종주는 이번이 3번째 이지만 무박으로 산행은 첨이라 출발 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혼자 였으면 감히 엄두도 못냈겠지만 같이 산행 하는 캠프 회윈덕에 무탈히

내려올수 있었다...


코재..

경사가 심하여 코가 땅에 닿는다고...코재..

종석대(鐘石臺)

정상부가 암릉으로 엎어놓은 종처럼 오뚝하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지만 보이지는 않고..

아직 이런 새백 3시에 출발이니 경치고 뭐고 없고 단지 랜턴 후레쉬만 비친다.


 돼지령..

멧돼지가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노고단(老姑壇1507m)..노고단은 대간길을 약간 벗어나 있다지만..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말로는 할미란 뜻...


반야봉 삼거리..

반야봉(般若峰1732m) 지리산 4경인 반야봉은 대간 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반야봉은 독립 봉으로 천왕봉에 이어 두 번째 높은 봉우리 ...

이 야밤에 다녀올 엄두도 나지 않는다..


삼도봉(三道峰1449m)..

남한구간중 세 번째 삼도봉이다.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3개도가 이 봉우리에서

경계를 나눈다.

 

아직 새벽의 어둠은 계속되어지고 벌써 머리에서 부터 끈적한 소금기를 머금은

땀이 내리기 시작한다.

 

화개재..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중 하나..참 우리 조상님들의 대단함..

우리나라 선조님들은 물물교환을 보통 1300 고지 이상에서 합니다?????

그 당시 등산화도 없었고 배낭도 없을터..

지게,봇짐에 짚신으로???

경이 롭다는 생각 뿐이네...

좋은배낭에 좋은 신발에도 벌써 지쳐 핵핵 거리니...나 자신이 부끄럽네..

화개재와 삼도봉 구간에 1999년에 설치한 600여개의 나무계단이 준비되어 있다.

제대로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지난 겨울산에 미끄럼처럼 타고 내려온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또박또박 밟고 지나야 한다..

 

화개재를 지나니 서서히 여명은 밝아오고..

이제야 주의가 제대로 보이네..

 

 


토끼봉 1535m..

반야봉에서 방위가 묘(卯)향이라 하여 묘봉이라 부르다가 토끼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덕평봉 전의 봉우리에 꽃이 핀 모습을 보고 꽃대봉이라고도 불렸다고..


연화천 산장..

이제야 하늘이 열리고..이곳 샘터도 물이 충분히 나오고 있고..

이곳도 제법 관리가 잘 되어있다..

 

연하천 발원지의 남쪽 봉우리...명선봉..

존경하는 남대장님과 함께..

이분은 하루에 100km 산행을 가뿐히 하는 분이라??

거의 산신령 수준의 축지법에 득도 하신 분...


형제봉(兄弟峰1447m)

형제봉의 원래 지명은 부자암(父子巖)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에서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뒤에 삼부자는 날마다 지리산 이곳에

올라 아내와 어미를 기다리다 화석 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바위....

어째 보면 애틋한,안타까운 생각도 나고??

근데 그 선녀는 자식, 남편 버리고 하늘나라 에서 잘 살고 있는지??

무심결에 매번 지났지만 이번에는 조금 엄숙히 생각하며 봉우리를 지난다..


벽소령(碧宵嶺1399m)...   벽소령 입구..

벽소령의 원래 이름은 초료조(鷦鷯鳥)재라고 한다.

초료는 우리가 흔히 촉새 또는 때까치라고 부르는 뱁새의 학명이며 우리나라 텃새이다.

지리산 5경인 벽소령 명월은 이 고개를 넘는 이들이 이 풍광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달빛이 밝다 못해 푸른빛이 비추는 지리산 달밤의 운치....


노고단의 기막힌 운해를 벽소령에서 대신 감상하며..

지리산 종주시는 매번 이 산장에서 달빛을 꼭 보고 갔건만...

달빛 아래에서 끓여 먹던 라면은 왜그리 기억이 오래갈까??



선비샘...

지리산 에는 아무리 높아도 충분한 식수를 제공해 준다..

실로 대단한 배려가 아닌가??  하늘이 주는,자연이 주는, 지리산이 주는 선물??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동안 가난하고 천대 받으며 살아온 노인이 죽은 뒤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이 노인의 아들들은 선비샘위에 노인의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먹을 때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무덤에 절을 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샘에는 몇 해 전만 해도 엎드려 물을 먹어야 했는데

지금은 파이프로 시멘트 물탱크에 연결하여 선채로 받아먹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덕평봉(德坪峰1651m)... 덕평봉 전망대

정상은 평평하므로 덕스러워 보인다 하여..

덕평봉 가기 전 포토 타임..

웃지만 웃는것이 아님..무릎이 서서히 아프니...ㅎㅎ


 


 

덕평봉 가기 전 조망과 함께...


지리 지리한 산.....

지리산의 정기를 받으며???


칠선봉(七仙峰1576m)

입곱게의 바위가 모여서 정상을 이룬다고 해서 칠선봉이다.


지친다 지쳐....ㅎㅎㅎ

다행히 가는 곳 마다 샘물이 있어 배낭은 가볍게 다닐 수 있다는 장점...


영신봉(靈神峰1651m)..

남낙정맥의 시작하는 곳...

삼파수의 기점으로 낙동강, 섬진강, 남강의 세갈래로 흘러가는 꼭짓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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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제이캠프 3차 우보 선생님..

1 지리산의 역사

지리산 권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마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한의 도성이 지리산 달궁으로 피난 했다는 설이 전해지며

산청에 있는 구령왕릉은 신라 왕국을 피해 6세기경에 지리산 자락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가야국의 전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 자락 골골이 숨어들어선 전통마을의 역사적 기원이나 형성 동기를 보면

많은 경우가 조선시대의 전란을 피해 입지하고 있다.

지리산의 험난한 역사는 삼한과 가야 및 삼국시대 애는 국경의 접변지대로 싸움터의 무대였고

고려 때는 왜구의 침입과 민란의 현장 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대변되는 침략의 밀물을 겪어야 했다.

근대엔 동학민중 운동과 여순반란과 한국전쟁에서 피로 얼룩진 전쟁 터였다.

구례의 석주 관과 고려 말 이성계가 섬멸한 남원의 황산대첩 비지 여원 치와 피아골 등은

왜적을 막던 지리산의 역사적 현장이며

특히 석주 관에는 정유재란때 순절한 의사의 위패를 모신 칠 의단과 승병및 의병을

모신 비석이 당시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더욱이 지리산은 현대사에 접어들어 1948년 10월 여순반란에서 시작하여 1955년까지

계속된 좌우 대립의 치열한 격전으로 수만 명의 묵숨이 쓰러진 곳이다.

지리산은 1967년 12월 27일 우리나라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2 지리산 이름의 유래

1)신라 五岳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으로 달라진다하여

   智異山이라 하였다.

2)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찬탈하려고 명산에 기도를 드리러 다닐 때 이었다.

   백두산, 금강산, 신령은 쾌히 승낙하였는데 지리산 신령은 승낙하지 않았다.

   그래서 智慧가 다른 신선이 사는 산이라 하여 智異山이라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3) 백두산이 흘러와 된 산이라 하여 白頭山의 頭 흐를流자를 쓰서 두유산(頭流山)이라 하고

    남해에 이르기 전 멈추었다 하여 서 두유 산이라고도 한다.

    이를 순 우리말로 지리산의 산세가 두리뭉실하여서 두루 두리를

    한자로 頭流가 되었다고도 한다.

4) 지리산이란 지명에 대해 현재 남아있는 역사물로 가장 오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887)년 최치원 선생이 쌍계사의 진감선사 비문에 등장하는 智異山이다.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흥덕왕때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사신 대렴이 차 나무 씨앗을 가지고 오니 왕이 智理山에 심게 하였다 가

    최초인데 삼국사기의 기타 기록에도 智理山으로 표기 되어있다.

    이 밖에도 방장산 덕산 민중적 변혁의식의 장소성이 반영된

    불복산(不伏山)과 반역산(反逆山)등도 지리산의 또 다른 별칭이다.


3 지리십경(智異十景)

제1경 천왕일출(天王日出)

        천왕봉의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을 정도로 보기가 어렵다.

제2경 직전단풍(稷田丹楓)

        피아골 단풍 피아골은 지리산의 울음주머니로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에 이 계곡에

        흘린 피가 많았다고 한다.

제3경 노고운해(老姑雲海)

        지리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게 산허리를 휘두른 구름인데

        특히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으뜸으로 칭한다.

제4경 반야낙조(般若落照)

        해가 떨어지면서 구름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덩어리는

        자연이 만든 화려한 잔치다.

제5경 벽소명월(碧宵明月)

        벽소령은 예부터 화개에서 마천으로 넘나드는데 쓰이던 고개다

        이 고갯마루에 바라본 밝은 달은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제6경 세석철쭉(細石擲薥)

        해마다 오월 말이면 지리산 세석고원 에서는 고운 분홍색 철쭉이

        피어나 지상낙원을 이룬다.

제7경 불일현폭(佛日懸瀑)

        지리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불일폭포에서 쏟아지는 물보라로 인해

        지리십경에 들게 되었다.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이다.

제8경 연하선경(烟霞仙境)

        연하봉의 이끼긴 기암사이에 가득 들어찬 고사목 숲은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제9경 칠선계곡(七仙溪谷)  

        천왕봉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려 급류를 이루는 이 계곡은 한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골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다. 우리나라 삼대 계곡중의 하나이다.

제10경 섬진청류(贍賑)

         지리산을 남서로 감돌아 비단 폭을 펼쳐놓은 듯한 섬진강,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 보는 섬진강 풍광은 조물주만이 그려낼 수 있는 환상적이다.


지리산은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피난과

보신지 터전이기도 했다.

청학동 변증 설에서 우리나라의 형성은 험조함에 산이 서리고 물이 감돌아

양의 창자 같은 곳이 아님이 없고 그리하여 사이사이에 洞天과 福地가 많다고 했다.

조선중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서도 지리산은 흙이 두텁고 기

름져서 산 전체에 사람 살기가 알맞고 산 안에 백리나 되는 긴 골짜기가 있어

바깥쪽은 좁으나 안은 넓어서 사람이 발견되지 못한 곳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미루어 볼 때 피난지 은거지로 적합한 지리산의

자연 지형적 조건을 잘 나타낸 것이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