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21차 (죽령~고치령)
백두대간 21차산행(2016.02.28)
소백산 구간 : 소백산 비로봉
☞ 교통편 : J-Camp
☞ 코스 : 죽령~제2연화봉~천문관측소~제1연화봉~비로봉(1439)~국망봉(1421)~상월봉(1394)~
늦은맥이~신성봉갈림길(우턴)~마당치~1032봉~고치령770~좌석리
소백산...
작은 백산 이라..
오늘까지 비로봉은 네번째로 유독히 겨울에만 다녀갔네..
비로봉의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희미한 달그림자와 함께 출발하여 바지런히 올라섰구만 기대했던
비로봉의 일출은 구름속에 가려져 버리고..
중독성이 강한 소백산 칼바람도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이런 환경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산행내내 고심하게 된다..
죽령...
죽령(竹嶺)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고개이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 3월에 이 길을 열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 죽죽이라는 사람이 왕의 명을 받고 죽령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직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위로하기위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으로 삼국시대에 전쟁이 잦은 곳으로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장수왕 말년 신라 진흥왕12년에 거칠부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를 침공하여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뒤 영양왕 1년 고구려 장수 온달장군이 왕께 자칭하여 죽령이북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죽령은 군사적 요충지 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우왕 8년과 9년에 왜구가 죽령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주의가 온통 컴컴해서 해드라이트에 비취진 앞만보고 다닌다..
지루한 임도가 4~5,6km되는것 같다..
아마도 낮이면 더욱더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참 나 같은 인간들이란???
연화봉...
연화는 연꽃에 유래
부처님 주변에 항상있는 꽃...그래서 비로봉 주변 봉우리를 연화라고 했다고 한다...
아직도 날은 밝아지지 않고 어렴풋 달 그림자만 보이네..
다행이 바닥은 아직 밟고 지나지 않는 하얀 눈으로 발길을 밝혀주네..
주목 감시초소전 전망대에서...
주목 감시초소에서 바라본 비로봉...
주목감시초소..
소백산 주목은 졸부들의 집안 장식품으로 인기가 높아 고가에 팔리면서 주목도벌군 감시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오늘은 야간산행의 시작으로 아무도 업다..ㅎ
평상시 칼바람의 은신처로 발디딜 틈이없었구먼 오늘은 넉넉히 통째로 빌렸다
아직 여유가 있음...
컴컴한 야밤에 산행을 하니 앞만 보고 오다가 어부지리로 감시초소 도착...ㅎㅎㅎ
비로봉...
부처의 진신(眞身)을 일컫는 말이다.
붉밝혀 진리의 길을 인도하는 춧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면 바로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하고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오리를 틔운 연화봉이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향하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의 산이요 하나의 진리요 하나의 깨달음이요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이다.
국망봉..
천년사직 신라 마의태자 가 신라를 찾기위해 노력하다가 수포로 돌아가자
금강산으로 가기전 이곳에 올라 서라벌 경주쪽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신라천년의 애환이 담긴 곳이네...ㅎㅎ
국망봉에서 바라본 소백의 지나온 능선...ㅎㅎㅎ
나만 산을 찾으면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오거나 심지어 눈까지...ㅎㅎㅎ
지름도 눈이 오지만 이정도 조망이면 만족 만족 대만족.....
고치령
소백산을 넘나드는 큰고개 3개중 한나...죽령,고치령,마구령..
단종복위 운동을 벌이든 사람들이 뜻을세우고 수시로 넘나들던 장소
수양대군의 동생 이자 단종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세조의 왕위찬탈 반대하다
순흥으로 유배 되었다한다..
산신각
옛날이곳을 지나던 백성들이 무사히
산을 넘을수 있도록 산신령께 기도하는 장소이며 과거 순흥지역에서 영춘으로 말을 이용해 세곡을 옮길 때 사고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던 신당(神堂)이기도 하다.
고치령 넘어 있는 마락리(馬落里)라는 동네 이름도 우리 식으로 풀면 말이 떨어진 마을이 된다.
이 고개를 넘다 사고가 많이 났나보다..
희날리는 눈과함께 산행 종료..